​한국 대중가요의 흐름을 말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열아홉 살 나이에 혜성처럼 등장해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작곡가 윤일상이다.

김건모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김범수의 〈보고 싶다〉, 터보의 〈회상〉,

이승철의 〈인연〉,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등 대표곡을 헤아리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지난 20여 년간 큰 슬럼프 없이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지각을 뒤흔든 원동력은 뭘까 궁금했다.

타고난 음악적 달란트,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시련과 방황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수많은 히트곡만큼이나 오색영롱한 그의 삶의 이야기가 꽤 들어봄 직하다.
취재 서진아 사진 정화영

근황부터 들어볼게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복면가왕〉, 〈TOP 밴드〉, 〈위키드〉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 이어서 출연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곡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방송 출연은 음악에 방해된다 싶으면 정중히 거절하고 있어요. 음악과 관련이 없는 프로그램의 제안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 같아서 고사했어요.

 

 

일중독이라는 인상이 살짝 있어요. 일과 가정 중에 우선순위는? 

당연히 가정이 우선이죠. 사실 결혼 전에는 음악 외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가정이 그 자리를 꿰찼네요. 음악은 그만두더라도 가족은 지켜야 하니까요. 29개월짜리 아들딸 쌍둥이가 있는데 아내 혼자 돌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려고 하는데 많이 부족하죠. 가정을 지키려면 아빠가 강건해야 하는데 아픈 데가 많아서 미안해요. 그래서 건강에도 조금 신경 쓰게 되었어요. 생전 안하던 운동도 시작했고요.

 

어릴 때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피아노를 전공하시고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셨는데 저에게는 안 가르쳐주셨어요. 그런데 외가 쪽에 클래식 음악을 하신 분들이 많아 눈만 뜨면 음악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저절로 음감을 익혔죠.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때 주로 작곡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천재라고 할 수 있네요.  

틀에 얽매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게 저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음악적 환경이 자연스럽게 마련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저만의 음악 세계가 자유롭게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 미술 등 예술 교육은 억지로 시키면 안 돼요. 부모는 아이가 예술적으로 재능과 관심이 있는지 관찰하고, 그렇다 싶으면 보조 역할을 해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일찍이 꿈을 정하고 한길을 걸어오셨잖아요. 방황했던 시간은 없었나요? 

음악이 좋아서 계속해 오고 있지만 그 길이 항상 꽃길이었던 건 아니에요. 성격도 예민하고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 몰두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정신적인 소비도 심한 편이에요. 우울증을 평생 감기처럼 안고 살아간다고 할까요? 하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특별함은 음악에 한에서만, 나머지 삶은 평범하고 평안하게 살려고 매순간 노력해요.

 

 

한때 독신주의를 외치셨다고 들었는데… 결국 결혼하셨네요. 

제 일의 성격상 생활 패턴이 불규칙하고 미래도 불안정하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독신주의자로 사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해 왔고요. 그러다 지금 아내의 사진을 본 순간 그 결심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자마자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만나는 날 아내에게 결혼하자고 했어요.

 

 

아내분이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나요?

아니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죠. 아내는 교과서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저의 돌발적인 생각과 행동에 당황했던 모양이에요. 첫 만남 이후에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나 저는 생애 처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쉽게 포기할 수 없었죠. 모든 수단과 인맥을 동원해 아내를 설득해 한 달 반 만에 상견례하고 6개월 만에 결혼했어요. 신혼여행을 갔는데 너무 안 친해서 어색하더라고요. 하하.

 

 

결혼하니 좋던가요? 

저희는 결혼하고 연애를 시작했어요. 아이 태어나기 전까지 3년간 뜨겁게 연애했죠. 그 경험으로 후배나 친구들에게 귀띔해요. 느낌이 오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오래 연애하지 말고 결혼하라고요. 결혼 생활에 만족한다는 얘기겠죠. (웃음) 
결혼을 못 하거나 안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성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에요. 나이, 외모, 학벌, 성격, 직업… 이렇게 세세히 따지다 보면 결혼 못 해요. 저는 아내에게 크게 바라는 게 없었어요. 딱 두 가지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는 사치하면 안 되는 것, 두 번째는 깔끔한 것. 연애할 때 아내에게 카드를 준 적이 있는데 전혀 안 쓰더라고요. 또 우연찮게 작업실 청소를 맡긴 적이 있는데, 저와 비슷하게 쿠션 간격까지 딱 맞춰 놓았더라고요. 내 짝이다 싶었죠.
아내를 만나면서 깨달은 게 삶, 죽음, 결혼, 출산, 일… 이런 것들은 인간의 판단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스스로 독신주의라 외치고 다녔더라도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더라고요.

 

 

하나님은 언제 만나셨나요? 

저는 모태 신앙인이에요. 중학교 때까지 예배에도 꼭 출석하고 수련회도 가고 그랬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회의주의에 빠졌어요. 그러면서 성경을 지나치게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했다고 할까요. 성경에서 의문 나는 부분을 형광펜으로 긋고 목사님께 여쭤보면, 목사님은 믿음의 종교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린 마음에 그 말을 납득할 수 없어 그냥 부정해 버렸던 것 같아요. 또 교회에서 사람 때문에 여러 번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점점 교회와 멀어졌어요. 사람에게 실망한 걸 하나님께 실망한 걸로 느끼고, 신앙적으로 암흑기를 겪었죠. 22살 정도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회복하시게 되었나요? 

19세에 데뷔해서 쉬지 않고 일한 덕에 음악적으로 커리어가 높아졌어요. 이름은 꽤 알려졌지만, 그 이상으로 고통도 많이 받았죠. 하루 2~3시간 정도 자면서 음악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거의 혼자이다시피 했어요. 점점 폐쇄적으로 바뀌고 대인 관계는 단절되고 공황장애까지 생겼어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고요. 많은 모함과 음해로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에까지 불려갔어요. 음악을 제외하고는 전부 엉망이었죠. 해서는 안 되는 시도도 두어 번 했었어요.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그때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하나님 도와주세요”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교회에 찾아갔어요. 예배당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가는데, 그 순간에 들려오던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해요. 내가 다시 교회를 찾다니….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맨 뒤에 앉아서 사람들이 나갈 때까지 계속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데 오직 한 가지 기도만 나왔어요.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어깨에 손을 얹고 만져주시더라고요. 그제야 알았죠. 하나님은 내 곁에 언제나 계셨었다는 것을요.  

 

 

윤일상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친근하고 따뜻한 하나님이죠. 저는 운전을 하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잠깐 짬이 날 때도 늘 기도해요. 구약성경을 보면 벌 주시고 근엄한 하나님의 모습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저에게 하나님은 굉장히 친근하고 밝은 분이에요. 예수님께 “형님, 이렇고요, 저렇고요” 하고 미주알고주알 보고하듯 기도할 때도 있어요. 하하.
그런 친근한 하나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전도도 많이 했어요. 6개월 동안 30명을 전도한 적도 있어요. 저는 전도할 때 “예수 믿자” 하지 않고, “좋은 강의 들으러 가자” 해요. “그 강의 듣고 하나님 안 믿어도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강의에서 네 이야기가 나올 거다.” 당연히 본인 이야기가 나오죠. 누구나 경험하는 거잖아요. 심령이 가난할 때 설교 들으면 모두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는 거.
한 가지 조심하는 건, 신앙적으로 교만하지 않고, 허영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내가 너보다 성경책 많이 읽었어, 성경적으로 많이 알아,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실 거야’ 같은 마음 말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늘 기도하고 성경 말씀에 따라 충실히 살면서 겸손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곡하신 곡들의 면면을 보면 장르에 제한이 없어요.

그중에서 특히 애착 가는 작품이 있나요? 

저는 음식이든 음악이든 편식을 안 해요. 한 가지 스타일과 패턴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모든 곡이 저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소중합니다. 특별히 애착 가는 곡은 없지만, 특별히 힘들 게 작업한 작품은 있습니다. 뮤지컬 〈서편제〉인데요, 준비하면서 생을 달리한 분도 계셨고…. 거의 전곡을 제가 만들었는데 주인공 송화의 인생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어요. 중간에 눈이 머는 장면을 곡에 담을 때는 밥 한술 뜰 수 없을 정도로 탈진 상태까지 갔어요. 작품에 너무 몰입한 거죠.
그때 아내가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못할 것 같다고, 계약금 다 돌려주고 포기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저의 전곡이 담긴 무대가 세워지면 너무 행복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힘내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힘을 얻어서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했고, 그 작품은 아홉 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죠. 힘들었던 만큼 마음에 많이 남는 작품이에요.

 

 

뮤지션으로서 꼭 지키는 원칙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뮤지션에게 있어서 가장 안 좋은 버릇은 익숙함이라고 생각해요. 코드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익숙해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요. 특히 연주의 경우는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자기도 모르게 익숙한 주법이 나와요.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을 많이 하는 것만이 방법이죠. 꾸준히 반복하되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 말은 쉽지만 실전에서는 고통이죠.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라, 창작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죠.

 

 

곡 작업을 할 때 다른 곡은 잘 안 들으신다고 들었어요. 

처음 데뷔 음반 작업할 때부터 생긴 버릇이에요. 그 당시에는 내가 리드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데, 그게 버릇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거리에서나 찻집에서 나도 모르게 유행하는 음악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렇게 짧은 순간에 들은 음악도 내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런 것들도 다 차단해요. 음악적 허영은 아니고, 단순한 버릇입니다. 하하.
그리고 보통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음악을 집중해서 못 들어요. 음악을 들을 때 구성이나 구조가 자꾸 떠오르니까 단순하게 즐기지를 못하죠. 그래서 최근 트렌드를 알기 위해 빌보드 차트나 영국 차트의 곡들을 듣더라고 앞부분만 살짝 듣고 전체적인 흐름만 파악하는 정도죠.

 

 

언젠가는 윤일상의 찬양곡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제 오랜 꿈이죠. 제 컴퓨터에 저장된 폴더 중에 ‘Jesus’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어요. 그 안에 찬양곡들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그것이 모티브가 되어서 세상 밖으로 나온 곡도 있어요. 언젠가는 오롯이 하나님만을 위한 노래가 만들어져 많은 분들께 들려드렸으면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불러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기다리면서 곡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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