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 연구
김성욱 | 2004. 10.
이스라엘의 포로기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67년 동안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란 것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역사적 배경
앗수르의 바니팔(오스납발, B.C.668~632, 대하 33:11~13; 스 4:10) 왕이 죽은 이후, 앗수르에서는 온 나라를 내란으로 몰고 가는 큰 혁명이 일어났다(B.C.627~624). 이 혁명은 앗수르의 파멸을 초래하였으며, 당시의 신흥국가인 바벨론은 이러한 혼란 상태를 통하여 독립을 되찾았고, 그 후 바벨론은 B.C. 612년에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함락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애굽과 바벨론의 세력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이 틈을 타서 고대 근동의 전통적인 강국인 애굽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회복하려고 했지만 바벨론의 나포폴리살 왕은 군대를 이끌고 앗수르의 나머지 세력들을 쳤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바로 느고의 군대마저 격퇴하였다. 이어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Carchemisch) 전쟁에서 애굽의 주력 부대를 완전히 격파하였고, 또 이스라엘 백성 중 일부를 포로로 잡아가고 애굽의 하수까지 남하하였다(왕하 24:7). 따라서 이런 전쟁을 계기로 바벨론은 명실 공히 고대 근동의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성경과의 역사를 연결하여 보면, 이 갈그미스 전쟁 중에 바벨론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1차 포로가 이루어진다(B.C.605년). 성경에서는 분명히 유다가 완전한 멸망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계속하여 바벨론에 항복할 것과 또 70년 동안 포로가 될 것을 선포하셨다. 예레미야 25장 12절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하되”(참고 렘 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라고 말씀하는데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계속적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 결국 망하게 되었다.
이윽고 여호야긴왕이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느브갓네살은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유다 백성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다(B.C. 597년). 그는 시드기야(B.C. 597~587년)를 왕으로 세우지만, 결국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짓밟히고 예루살렘성전은 시드기야 11년(B.C. 586년 7월)에 완전히 함락되고 만다. 이 때 시드기야 왕은 몰래 도망을 치다가 잡혀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갔으며, 자신의 아들들은 그의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시드기야왕은 두 눈을 뽑히고 또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붙잡혀 갔다. 이런 사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400여년 전통을 이어온 솔로몬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포로생활을 하면서 이 때부터 디아스포라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한 그 기한이 차고 이스라엘들은 포로 잡혀간 지 약 70년 만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허가를 받았다. 마치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이 세 차례(B.C.605, 597, 586)에 걸쳐 진행되었듯이 이스라엘이 포로에서의 귀환하는 것도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는가를 확인시켜 준다. 제1차 귀환은 B.C. 538년에 왕통의 후손인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그의 인도 하에 이루어졌으며(스 1:5~2:70), 일반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은 바로 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다. 제2차 포로귀환은 그로부터 약 80년 후인 B.C.457년에 일어났는데, 에스라의 인도 하에 귀환하였다(스 8:1~14). 또한 제3차 귀환은 그로부터 13년 후인 B.C.444년에 느헤미야의 인도 하에 귀환하였다.

포로생활 70년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
이스라엘의 포로생활과 그 귀환에 관하여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 9장 1~2절에서는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라고 하며 이것은 예레미야 25장 11~13절과 29장 10절의 내용 염두에 둔 것으로, 에스라서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비교 스 1:1~2, 대하 36:22~23).
이스라엘의 포로귀한은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닦은 왕인 고레스가 B.C.538년에 조서를 내림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포로기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B.C.605~538년이므로 67년 동안이다. 그리고 당연한 귀결로 제2차 혹은 제3차 바벨론 포로로부터 바벨론포로 기한을 규정한다면, 그 기간은 훨씬 더 많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란 것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에 관한 많은 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 주제에 관하여서는 간과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향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한다. 첫째, 실제는 67년이지만 마치 70년으로 생각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67년이나 70년이 별 차이가 없고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구태의연한 작업인 듯이 보일지 몰라도, 이 부분을 한번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 바벨론 포로의 70년이란 것은 상징적인 수로 인식하며 그에 따른 성경적인 해석의 근거를 제시한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대하 36:21).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매 7년이면 안식년이고 또 이런 안식년에 10번(완전수)을 곱한 것을 70으로 설명한다. 즉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를 통하여 충분한 안식을 취한 후에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셋째, 그 동안 이스라엘이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만큼 안식을 취하게 하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근거의 타당성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견해를 종합하고 발전시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으로 이스라엘의 포로기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정리할 수 있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심판 중에 가장 혹독한 심판으로 철저한 징벌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서 뽑혀 이방의 땅으로 그리고 각처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생존권과 관련된 것으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사상과 관계된다. 두 번째 입장은 이것에 더 나아가 역대하 36장 21절에서처럼 ‘안식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포로생활 70년은 심판의 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건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의 자리에 영원히 버려두시지 않고 회복시키는 분명한 소망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황무한 토지가 70년 동안 안식을 누리며 새로운 경작을 준비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 심판을 통하여 정화되고 정결케되어 새로운 시대 메시아의 도래를 대망하며 소망을 가지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동의를 표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여전히 남는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이 실제 67년인데 70년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고레스(Cyrus) 왕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스라서의 역사기록에 관한 독특한 방법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에스라서에 기록된 것은 연대적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성전 건축 때의 일(B.C.538~516)과 성벽 건축 때의 일(B.C.444)이 겹쳐서 등장하기에 그 내용을 파악하려면 100여년의 이스라엘 역사를 잘 구별하여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에스라서가 일반적인 역사처럼 기록되지 않고 구속사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역사 기록이라고 한다.
에스라서의 첫머리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것을 언급한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스1:1~2)
여기에 등장하는 고레스는 이사야 44장 28절에서 45장 4절에 나타나고 그 외에 여러 곳에도 등장한다.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과 관련하여 그를 페르시아(바사)왕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같은 에스라서 내에 있는 5장 13절에서는 고레스를 “바벨론 왕”이라고 묘사하고 있고, 더 나아가 6장 22절에서는 “앗수르 왕”으로까지 묘사하고 있다. 이를 표면적인 역사 이해로 본다면, 이것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실에 관하여 잘못 기록하고 있는 모순처럼 보인다. 이런 사실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에스라서는 독자들에게 독특한 구속사적인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 근거를 파악한다면, 이러한 역사기술은 무지에 근거한 역사적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세속의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구속사라는 안목을 제시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먼저 5장 13절에는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라고 하는데, 이 사건은 최소한 에스라 5장 1~17절의 문맥에서 읽어야 한다. 여기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벨론 왕이란 특별히 느부갓네살 왕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가 이스라엘에게 한 치적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불사르고 헐며 그 성전에 있던 온갖 그릇들과 보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던 것이다(왕하 25:8~17; 대하 36:11~21). 그런데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는 이스라엘을 귀환시킬 때, 이스라엘 백성들만 본국으로 귀환조처 한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도록 조서를 내렸다. 또 이 조서에는 B.C.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할 때 가져온 금, 은 기명들을 다시 돌려주도록 명하였다. 그렇다면 에스라 5장에 나타나는 “바벨론 왕”이란 표현은 그 문맥에서 본다면 성전파괴와 관련된 표현이 된다. 즉 바벨론 왕인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성전이 파괴되고 성전기구가 옮겨졌는데, 고레스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실패와 징벌에서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기에 고레스를 “바벨론 왕”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곧 고레스 왕이 분명히 페르시아 왕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왕이 행한 한 일을 다시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에스라서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바벨론 왕”이라고 언급한다.

성전 재건과 이스라엘의 사명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학개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개’라고 하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나 혹 그곳에서부터의 포로귀환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학개서를 다만 제2성전건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성경을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실과 연관하여 살펴보면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학개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포로이후의 역사에 관하여 여러 자료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B.C.539년에 고레스는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였고, 그 이듬해에 모든 유대인들은 고국에 돌아가도록 선포하였다. 당시에 약 5만 가량의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황폐한 땅에 돌아와 정착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면서 성읍도 재건하여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만들고 또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수축하고자 하였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먼저 제단을 쌓아 번제를 드렸고(에스라 3장) B.C.536년에 이르러서는 성전재건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 온 사람들의 방해로 성전의 기초만 공사하고(B.C.534년)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B.C.520년이 되었다. 다리오가 왕으로 등극한 그 다음 해인 당시까지도 제2성전 공사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부호들은 안락한 대궐을 짓는데 많은 투자를 하지만 성전은 돌보지 않았고(학 1:4), 일반 백성들은 또한 여러 재해와 어려운 일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 공사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학 1:6),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인 농작물에 대한 실패를 경고(학 1:10~11)로 주어 이스라엘이 주의 성전 건축에 게을리 한 그들의 죄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수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너무나 바빴다(학 1:9). 이 때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로 성전 건축을 하라고 명령하신다. 결국 학개와 스가랴의 권고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성전재건 공사는 다시 재개되었으며 결국 B.C.516년에 제2예루살렘 성전이 완공하게 된다. 새롭게 완성된 성전이 비록 예전의 솔로몬 성전과 같은 위용이나 웅장함이 없으나(학 2:3) 더 영광스러울 것을 말씀하시며(학 2:6~9) 이 부분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위로와 은혜와 감격의 말씀으로 부어주신다.
물론 학개나 스가랴 선지자의 등장이 B.C. 520년 이전이나 혹은 그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 1:1~2) 유대인의 달력에 의하면 유월은 1년 중에 가장 바쁜 계절인 추수기에 해당한다. 결국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마지막 추수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시기인데, 성전 공사를 재개한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전건축은 육체의 생명과 관계되는 추수보다 더 중요하며 근본적인 것이기에 이렇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등장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듯이, 하나님께서 이 시기에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권면하는 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역사개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하여 우리의 사고를 더 확대해보자.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70년이라고 하였으나, 그 년수가 실제적으로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보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무너지고 성전이 재건되는 기간을 따져보면 70년이 된다(BC 586~516). 만일 이 문제를 우연에 의한 70년으로 보지 않고, 그 역사적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해하며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성전이 훼파되고 성전이 재건되는 이 기간이 70년이 되는 것이다.
성경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성전이라는 사실이다. 곧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범죄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제사를 통하여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 주시는 장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포로 70년의 의미는 육적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된 기간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이 문제가 이스라엘의 본질과도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과 관계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즉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요 그분의 간섭과 인도와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인데, 이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성전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절망의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이 기간은 성전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바로 그 기간이 70년이다.

하나님의 영광으로서의 교회
이사야의 예언이 있은 지 약 100여 년 후에, 즉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바벨론의 침입이 있었고 또 약 20년 후에는 그 견고하던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그 성전도 훼파된다. 거룩하고 장엄하고 찬란하던 그 성전,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시기 때문에 온 천하가 다 무너져도 살아계신 이 하나님이 계신 이 성전은 결코 무너지거나 패함이 없을 것이고 세상에서 제일 안전할 것이라고 하며, 수많은 선지자들이 외치며 확신하며 보증하며 보장했던 그 성전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 무참히 갈기갈기 찢기고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 지내기 위해 사용되던 그릇과 모든 것을 이제는 이방들을 섬기는데 이용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그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그 왕들과 왕족들도 눈이 뽑히고 목배임을 당하고 또 노예처럼 이방 땅을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며 다른 이방 사람들을 개나 돼지처럼 인식하며 대하던 그 이스라엘은 이제 다 포로가 되어 세계 각 곳으로 흩어지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으나, 이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힘든 기간이며 시련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중심에 있어 그 백성들을 하나로 묶으며 이끌던 그 성전이 없어지고 또 그 성전을 재건하자니 각자의 일들이 많아 더욱 그 일은 외면당하고 있던 이 상황에서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성전의 참된 의미를 깨우쳐 주었다. 또 그와 함께 활동하였던 스가랴와 함께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것의 회복 곧 성전의 재건을 무엇보다 먼저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분명히 하는 의미에서 학개의 등장을 살펴본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역사개입으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일 때문에 혹은 하나님께서 수차례 경고로 주신 어려움 가운데 헤매고 있으면서 성전 건축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 진척 또한 시키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들어 이스라엘을 권고하시는 것이다. 더 크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70년 즉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곧 성전이 없이 지내야하는 70년의 기한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그 일을 담당해야할 이스라엘들이 자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선지자로 통하여 일깨우시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룹바벨의 제2성전은 구속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결국 이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학개 2장 9절에서는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는 예언과 축복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일은 웅장하고 옛 조상 다윗과 같이 화려하게 많은 돈으로 준비해서 국가적인 정책으로 대대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이 스스로를 자각하며 또 아무리 바쁜 중에라도 감당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요구된 것은 솔로몬의 성전과 같이 백향목이나 은금과 같은 호사스러운 재료가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산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순종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그리고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 외형에 있어서 솔로몬의 성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위로의 말씀으로 은혜를 더하신다: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학 1:8b),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학 2:9).
사실 이 성전의 재건이란 단순하게 무너졌던 솔로몬 성전의 재건의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무너진 옛 다윗 왕권의 회복이나 그 영화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간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솔로몬 성전과 같거나 비슷한 재료로 짓도록 명령하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더 중요하고 이스라엘의 본질과도 직결된 문제이기에, 그리고 스가랴서나 신약성경과 연관하여 볼 때, 이 성전건축은 장차 도래할 메시아 시대에 대한 전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빛과소금>이 '생명 넘치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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