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신약학의 어제와 오늘
성종현 / 장신대 교수 | 1992. 3.

Ⅰ. 신약의 역사
1. 18세기 이전의 성경연구
성경연구가 신약과 구약으로 분리된 것은 18세기 역사비평학의 대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에는 신, 구약 성경이 별도의 연구분야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연구되어져 왔다.
여기에서는 먼저 신약학 연구사에 일대 획을 그은 18세기를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시대의 성경연구 과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초대교회의 성경연구 (1-4세기)
초대교회의 성경연구는 크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성경연구 흐름으로 구분된다. 동방교회 안에서는 다시 알렉산드리아학파의 성경연구와 안디옥학파의 성경연구로 구분되어지는데 알렉산드리아학파에 속한 대표적 성경연구가가 바로 오리겐(Origenes, 184-254)이다. 오리겐 이전에는 판테누스(Pantanus, 180년경)와 클레멘스(Clemens v. Alexandrien) 영향력있는 성경해석자로 평가되었는데 클레멘스는 신, 구약 성경의 차이점과 통일성의 문제를 인식하였고 성경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였다.
오리겐을 통해 초대 동방교회의 성경해석이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그는 역사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였고 전승의 역사적 배경을 추구하는 석의적 연구를 하였지만 그의 성경해석 특징 역시 알레고리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성경의 신성과 영감성을 중시하였고 성경의 문자 뒤에 담긴 깊고 심오한 감추인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유세비우스(Eusebius v. Caesarea)는 오리겐식 알레고리적 해석에 언어학적―역사적 연구를 가미시켜 주로 복음서들을 역사적―석의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였다.
반면에 안디옥학파에서는 오리겐과 플라톤의 철학적 유산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서 성경을 더욱 언어학적이고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대표적 학자는 디오도루스(Diodorus v. Tarsus)와 그의 제자 테오도르(Theodor v. Mopsuestia )가 있다. 이 학파의 마지막 주요 성경학자는 테오도레트(Theodoret v. Kyros)로서 그는 역사적―문법적 주석서들을 저술하였다.
서방교회 역시 많은 탁월한 성경해석자들을 배출시켰는데 대표적 학자들은 터툴리안(Tertulian 히폴리트(Hippolyt v Rom), 키프리안(Cyprian v Karthago),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어거스틴(Augustin)으로서, 이들의 성경해석의 특징은 성경을 더욱 교회예식과 신앙생활에 밀접하게 결부시켜 해석한 데 있었다. 특히 어거스틴은 서방교회의 가장 뛰어난 성경해석자로서 복음서 연구와 해석학 분야에 주요한 저서들을 남겼는데 그의 성경해석이 이후 중세교회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2) 중세에서 종교개혁시대까지의 성경해석자들
중세교회의 성경해석은 초대교회 성경해석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Johannes Chrysostomos)의 영향으로 주로 교회예식과 관련된 성경연구가 이루어지는데 그 특징은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중시한 것이다.
서방교회에서는 수도원을 중심으로한 성경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대표적 학자는 베다 베네라빌리스(Beda Venerabilis)로서 그를 통해 중세교회의 성경해석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중세교회 성경해석의 종합이 인문주의(Humanismus)시대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데(L. Valla, D. Erasmus) 이들은 주로 초대교회 대가들의 성경해석 정신을 계승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시대에 라틴어 번역성경 불가타(Vulgata)에 대한 헬라어 사본들과의 비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등 사본 연구와 언어학적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된다.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의 출현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의 성경해석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성경 속의 “율법과 복음”을 구분한 루터는 “성경을 통한 성경해석”의 원칙을 고수하고 신, 구약 성경을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한다. 멜랑시톤(Ph Melanchton)은 인문주의 시대의 성경해석 유산을 종교개혁 정신과 결합시킴과 동시에 다시 알레고리(Allegorie)와 유비(Typologie 많이 사용하게 된다.
칼빈(J. Calvin)은 루터의 성경해석 정신과 유사한 입장에서 역사적이고 언어학적이며 문법적인 방법을 통하여 성경을 해석한다. 칼빈 역시 당시 교회의 알레고리적 해석전통을 청산하고 신, 구약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나 루터식의 율법―복음의 구분을 해석의 척도로 삼지는 않았다.

2. 18세기 역사비평학과 신약학 연구의 출발
18세기 계몽주의 물결 속에서 성서학계에도 거센 새 바람이 불어오게 된다. 신학연구의 전문화 과정에서 신약과 구약이 분리되고 신약학계에서는 신약성경 27권을 일차적 연구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부터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대두되는데 그것은 성경을 일차적으로 역사적이며 종교적인 문헌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 이해를 토대로 신약성경의 형성과 전승과정 초대교회 역사 속에서의 위치 주변 세계와의 관계 신학사상의 발전 과정 등을 연구하게 되었다.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이고 비판적―분석적인 성경해석의 아버지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물러(J. S. Semler, 1725-1791)이다. 그는 성경의 영감설과 계시성을 부인하고 성경본문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비판적 연구분석을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록된 성경본문은 전혀 동일하지 않다고 보았고 성경은 역사적 종교문헌이므로 다른 고대 문헌들과 같이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비평기준에 의해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러는 구체적인 역사비평학의 방법으로 문학비평(Literarkritik)을 도입하였고 성경 각권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기타 개론적인 연구를 활발히 진행시켰다.
가불러(J. P. Gabler) 역시 역사비평학적 연구의 전위적 인물로서 신약학의 독자성을 강조했고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합리주의적이고 욕사비평적인 신약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3. 19세기의 신약학 연구
신약학 연구는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독립된 분야로 진행되었다. 19세기 신약학은 18세기 역사비평학의 유산을 물려받아 시작되었는데 그 특징은 역시 철저한 역사적 비판적 신학적 해석으로 규정된다. 19세기에는 해석학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입장이 나타난다. 그 하나는 성경 본문의 재구성과 역사적 이해를 추구하는 바우어(G. L. Bauer)와 카일(K. A. Keil)의 역사적―문법적 연구방법과 다른 하나는 가불러(J. P. Gabler)와 슈텔린(C. F. Stahlin)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해석 방법이다.
슐라이어마허(F. D. Schleiermacher)는 이 두 입장을 절충하여 역사적 분석과 신학적 해석을 동시에 중시하였고 그 토대 위에서 본문을 인간의 감정을 통해서 심리학적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했다.
이 시대의 언어학자이자 본문비평학자인 라흐만(K. Lachmann, 1793-1851)은 신약원전(Textus Receptus) 연구에 크게 공헌하였고 다른 신약학 연구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였다.
19세기 신약학 연구의 또 다른 특징은 “원시기독교공동체”에 대한 다각도에서의 활발한 연구이다.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원시기독교공동체에 대한 활발한 연구 과정에서 “예수 생애”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다. 초기에는 요한복음서와 공관복음서에 대한 자료 비평학적인 이해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예수 연구”가 요한복음서에 기초하기도 했지만 (F. D. Schleiermacher, K. Hase) 점차 “예수 생애 연구”가 공관복음서의 진술을 토대로 이루어졌다.(K. G. Bretschneider) 그러나 본격적인 “예수 생애 연구”는 슈트라우스(D. F. Strauss)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요한복음서만을 신화적인 자료로 평가하지 않고 공관복음서 안의 많은 예수 전승들까지도 비역사적이고 신화적인(mythisch)것으로 해석한다.(Leben Jesu, kritisch bearbeitet).
그후 튀빙겐학파(Tubingen Schule)의 창시자인 바우르(F. C. Baur)가 예수 생애 연구를 자료비평학적으로 더 발전시켜 나갔지만 그것을 원시기독교공동체의 역사와 밀접히 관련시켜 해석하기도 했다. 바우르는 원시교회역사연구와 예수 연구 그리고 신약에 대한 개론적이며 문학비평적인 연구를 불가분의 관계로 결부시켜 놓았다.
그후 공관복음서에 대한 자료비평적인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학자들은 라흐만(Karl Lachmann, 1835), 뷜케(Ch, G. Wilke, 1786-1854), 바이제(C. H. Weisse, 1801-1866)등이다. 이들은 공관복음서를 통한 예수 연구가 충분한 자료비평적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후 홀츠만(E. H. J. Holtzmann, 1832-1910)이 본격적으로 마가복음서가 가장 최초의 복음서라는 “마가의 우선설”을 주장하였고 그 토대 위에 “두 자료설(Zwei Quellentheorie, 1863)"을 제시하였다. 홀츠만은 이러한 자료비평적인 연구분석을 토대로 하여 자유주의적이고 심리학적인 예수 연구서(Lebensbild Jesu)를 쓰게 되었고 이후 그의 연구서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바우르의 영향을 받아 19세기에 활발히 진행된 원시교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그후 릿츨(A Ritschl)과 하르낙(A Harnack)을 통해서 비판과 수정을 받게 된다.
바우르에 의해서 이끌어진 역사비평학적 신약연구에 반대했던 19세기의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튀빙겐학파의 원시교회 역사해석을 거부하고 신약성경 27권 전체의 진정성을 주장하기도 했다.(Bernhard Weiss, 1827-1918; G v Lechler, 1811-1888) 19세기 역사비평학적 연구에 근본적인 회의와 비판을 던진 무게있는 신약학자들로는 또한 오버벡(F. Overbeck), 크레머(H. Cremer), 슐라터(A. Schlatter), 짠(Th Zahn), 호프만(J. Ch. K. v Hofmann), 뤼커트(J. L. Ruckert), 켈러(M. Kahler)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튀빙겐의 보수적 성향의 신약학자 슐라터는 신약성경 각 문헌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도 신약성경의 통일성과 일치성을 더욱 중시한 학자이다. 그는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내용의 전승사적인 기원이 팔레스틴을 배경으로 한 예수 열두 제자 그리고 사도들의 믿음에 있음을 강조하고 그 믿음의 증거들은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인지를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한다.(Der Glaube im NT)
마틴 켈러는 초기에는 역사비평학적인 연구 쪽에 가까왔으나 1860년 이후 성경말씀과 신앙경험을 적절히 연결시키고자 하는 신학적인 노력 과정에서 점차 보수적인 신학자 계열에 끼게 되었고 그후 역사비평학적인 연구방법에 대한 비판에 가세하였다.
이러한 보수적 성향의 신학자들과는 달리 19세기에 또 다른 진보적인 성경연구의 흐름이 대두되었는데 그것은 릿츨학파(RitschlSchul)에 속한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사적인 연구”이다. 이들은 성경을 하나의 역사적 종교적 문헌으로 보고 성경의 진술 내용을 타종교 문헌들의 내용과 비교연구, 분석함으로써 상호관계성을 규명하고 그 토대 위에서 성경을 해석하고자 했다. 이 계열에 속한 학자들은 주로 괴팅겐대학을 중심으로 한 성경학자들로서 부트(W. Bousset), 아이히호른(A. Eichhorn), 브레데(W. Wrede), 바이스(J. Weiss), 하이트뮬러(W. Heitmuller), 슈바이쳐(A. Schweitzer) 등이다.
신약신학을 원시교회 종교사로 이해하고자 한 브레데는 그의 복음서 안의 메시야 비밀설(Das Messiasgeheimnis in den Evangelien)에서 예수의 메시야적 자의식을 담고 있는 본문들을 원시교회의 신학적 해석으로 평가함으로써 가장 오래된 마가복음서까지도 역사적 예수 연구의 타당한 자료가 될 수 없다는 신학적 결론을 내리게 된다. A. 슈바이쳐는 그의 예수 생애 연구사(Die 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에서 H. J. 홀츠만을 위시하여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모든 예수생애 연구가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선언한다. 슈바이쳐는 또한 그의 바울연구사에서 당시 종교사학파의 신학적 입장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 역시 해석학적 방법과 신학적 결론내림에 있어서 종교사학파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 20세기 신약학 연구와 오늘의 동향
20세기의 신약학 연구는 크게 세계 제2차대전 이전시대와 이후시대로 구분된다.
세계 제2차대전 이전시대(1918-1945)의 신약학 연구의 특징은 불트만(R. Bultmann)과 그의 양식사 연구로 대변되고 세계 제2차대전 이후시대(1945년 이후 현재까지)의 신약학 연구의 새로운 흐름은 불트만학파 신학자들과 여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해석학적 시도들에서 잘 나타난다.
양식사 연구(Formgeschichte)는 슈미트(K. L. Schmidt)와 디벨리우스(M. Dibelius)에 이어 R. 불트만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성경연구의 한 방법으로서 그 이전의 문학비평 자료비평 종교사적 연구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 양식사연구는 문학비평의 발전단계로서 문학비평이 관심을 갖지 못한 문서화되기 이전의 구전양식과 그 양식(Form)이 최초로 형성된 원시교회 안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 그리고 그 양식과 원시교회 상황의 상호관계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이 연구는 일차적으로 공관복음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나 점차 바울서신 연구와 사도행전 연구에도 확대되었다.
공관복음서에 대한 양식사적 연구 외에도 역사적 예수 연구 신약성경의 비신화화 작업 성경의 실존론적 해석 영지주의에 대한 평가 등을 통해서 불트만은 20세기 세계 신약학계에 연속적인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입장을 따르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20세기 최대 학파인 “불트만 학파(BultmannSchule)"가 형성되었고 이 학파는 오늘까지 세계 신약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불트만과 그의 제자들이 양식사 연구와 헬레니즘 연구에 치중한 사이에 신약학계의 또 다른 쪽에선 신약시대의 유대종교 문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갔는데 그 대표적 학자들은 달만(Dalmann), 슐라터(A. Schlatter), 빌레벡(P. Billerbeck), 키텔(G. Kittel) 등이다. 불트만학파의 성경해석 방법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이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서도 불트만학파와 입장을 크게 달리한다.
20세기 신학계의 또 다른 거장은 바르트(K. Barth)이다. 그는 로마서 주석을 통해서 그 이전의 모든 자유주의적―종교사적 성경연구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고 그가 주창한 “변증법적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을 통해서 새로운 신학연구의 방향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불트만과 그의 추종자들의 역사비평학적 방법 자체를 전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그 신학적 정당성을 부인하였다. 바르트는 성경본문의 역사적―분석적 재구성 작업보다도 신학적 해석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K. 바르트와 A. 하르낙(1923)사이의 서신교환이 당시 두 거장 사이의 신학적 논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바르트는 신학적 과제와 설교의 과제를 동일시 함으로써 신학연구와 교회현장에서의 설교의 관계를 중시한 반면에 하르낙은 신학적 과제와 학문 자체로서의 과제를 동일시 함으로써 신학연구의 학문성 자체를 중시하였다. 불트만은 초기에는 바르트와 함께 “변증법적인 신학”에서 출발하지만 신약연구 방법론과 성경의 실존론적 해석과정에서 점차 바르트로부터 멀어졌다. 1950년대에는 불트만이 제기한 “비신화화 논쟁”이 신약학계의 뜨거운 이슈였다면 1960년대 이후에는 성경해석학(Hermeneutik) 대한 연구와(G. Ebeling, E. Fuchs, H. G. Gadamer), 편집사적 연구(Redaktionsgeschichte), 신약학계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다.(H. Conzelmann, G. Bornkamm, W. Marxsen) 최근에는 튀빙겐대학교 신학부에 속한 성서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성경에 대한 급진적이고 과격한 역사비평학적 방법의 적용을 극복하고 신, 구약성경을 보다 더 계시사적이고 전승사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는데 여기에 속한 대표적인 학자들이 슈툴마허(P. Stuhlmacher/ 신약학), 헹겔(M. Hengel/ 신약학) 벳츠(O. Betz/ 신약학), 게세(H. Gese /구약학) 등이다. 이들은 18세기 역사비평학의 출현 이후 계속된 급진적이고 과격한 성경해석을 탈피하여 보다 성경중심적이고 교회중심적인 성경해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튀빙겐 성서신학자들의 시도는 앞으로 세계 신약학계의 진로를 어느 정도나마 암시해 주고 있다.

Ⅱ. 오늘의 신약학 공부
1. 신약학 공부계획과 방법
오늘날의 신약학 연구는 어학실력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약학 연구에 있어서 필수적인 언어는 영어, 독어 등 현대어 외에도 헬라어, 히브리어 등의 고대어이다. 언어는 고대어이든 현대어이든 짧은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 속에 꾸준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학습되어야 한다.
신약학의 연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이자 동시에 약 2000년 전에 기록된 역사적인 문헌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대한 역사적 비평적 그리고 신학적 해석은 필수적이다. 역사비평학은 여러 면에서 문제점도 지니고 있지만 오늘날 세계 신약학계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에 대한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방법이다. 따라서 역사비평학적인 방법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되고 부분적으로나마 실제 성경연구에 그 방법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신약개론과 총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신약성경의 연구 역사와 최근의 동향을 또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조건들은 신학생들로 하여금 집중적인 강의 수강과 상당한 독서량의 소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신학교육 과정에서의 집중적인 학습태도와 열정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2. 신약학 연구분야별 필독서
(1) 신약성서 개론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혀지는 개론서는 큄멜(W. G. Kummel)의 책으로서 우리말로는 박익수 역으로 번역되어 있다. : 신약정경 개론, W. G. 큄멜, 박익수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큄멜은 학문적으로 온건하고 중도적인 입장의 독일 신약학자로서 개론서에서 다양한 학자들의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신중한 결론들을 내리고 있다.
국내 신학자들이 쓴 개론서로는 교과서적인 다음 책이 있다 : 김철손, 박창환, 안병무 공저, 신약성서 개론, 대한기독교서회, 1983

(2) 신약성서신학
국내에 번역된 신약성서신학 책 가운데 가장 무난한 책은 역시 W. G. 큄멜 저, 박창건 역의 주요증인들에 따른 신약성서 신학(성광문화사, 1985)이란 책이다. 이 책 외에도 교과서적인 신약신학서로 전경연 외 4인이 공저한 신약성서 신학(대한기독교서회, 1985)을 들 수 있다.

(3) 신약총론
신약총론, 성종현 저, 장로회신학대학 출판부, 1991. 이 책은 신약성서 개론적인 문제들과 신약성서 신학적인 문제들 그리고 연구동향 그밖의 다양한 신약학 연구 관련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는 책으로서 신약학을 처음 공부하는 신학생에게나 일반 목회자에게도 신약성서를 공부하는 데 유익한 참고서가 될 수 있도록 집필된 총론서이다.

(4) 복음서와 바울서신 연구
복음서 신학, 김득중 저, 컨콜디아사, 1985. 바울의 기독론과 화해신학, P. 슈툴마허 저, 전경연 역, 한국신학대학 출판부, 1986. (복음주의신학 총서). 김득중 저. 복음서 신학은 사복음서의 신학적 구조와 특성을 편집사적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요약 정리해 주고 있고 슈툴마허의 바울의 기독론과 화해신학(전경연 역)은 최근 튀빙겐성서신학자들의 연구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좋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빛과소금>이 '생명 넘치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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