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십일조를 교회 외 다른 곳에 헌금해도 되는가
이상원 | 2003. 12.
최근 한국 교회의 성도들 중에 자신들이 출석하고 있는 본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게 헌금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계속 본 교회에 십일조 헌금을 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고민 뒤에는 교회 바깥에 도와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그를 돕기 위해 필요한 돈이나 물질은 항상 부족하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 있다. 이럴 경우, 차라리 교회에 내는 십일조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나 기관에 기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십일조를 본 교회에 내지 않고, 다른 교회나 구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단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십일조는 헌금의 최하한선을 규정하는 기준
우선 십일조의 기원을 알아보자. 아브라함이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일이 창세기 14장 20절에 기록돼 있다. 이로써 획득한 재화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헌금의 표준으로 삼은 일은 모세의 율법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 십일조를 헌금의 방식으로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십일조에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해마다 드리는 토지 소산 곧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신 14:23)로 이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의 생활비로 쓰여졌다(민 18:24). 둘째는 이스라엘 지파들이 바친 십일조를 생활비로 받은 레위인들이 그 받은 십일조에서 또 십분의 일을 떼어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도록 돼 있었다(민 18:26). 셋째는 해마다 드리는 십일조 외에 별도로 삼 년마다 한 번씩 십일조를 모아 하나님께 드리도록 돼 있었다(신 14:28~29). 이 십일조는 레위인을 포함해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구제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모세 시대에 하나님 앞에 드린 십일조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의 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 유지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십일조 생활을 현대 교회의 헌금 생활에 연결시켜 볼 때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하나, 십일조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 최대의 상한선을 규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최소의 하한선을 규정하는 기준이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이 천거하는 헌금의 정도는 십일조를 훨씬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수님은 성전 연보궤에 부자들이 연보하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연보하는 것을 보시고, 가난한 과부의 연보가 바른 연보임을 지적하셨다(눅 21:1∼4).
본문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아마 부자는 소득의 십일조 정도를 헌금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가에 따르면,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의 전부’를 드렸다. 예수님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의와 신을 버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마 23:23) 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십일조 헌금 생활을 인정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헌금관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예수님은 ‘생활비의 전부’를 드린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심으로써 십일조 생활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헌금 생활의 표준을 제시하셨다. 바울도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고후 8:3) 헌금 생활을 하도록 천거했다. 사실 헌금 액수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갖가지 다양한 기준들 가운데 십일조보다 더 탁월하고 적절한 기준은 달리 찾기 어렵다. 따라서 성도들이 십일조를 기준으로 평소에 규칙적인 헌금 생활을 하는 것은 훌륭한 신앙 생활이 된다. 그러나 성도들은 십일조를 상회하는 액수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른 모습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둘, 구약에서 십일조 관련 규정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의 바른 사용처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구약의 십일조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의 생활비와 기타 가난한 계층의 구제를 위해 사용되었다. 십일조가 레위인의 생활비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 사역을 위해 헌신한 전임 사역자들(지역 교회의 교역자들과 선교사들을 포함)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회 운영에 필요한 비용들도 넓은 의미에서 이 목적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도왔다는 것은 교회 전임 사역자를 지원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을 뜻한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돕는 일, 장학 사업, 병원 지원 등이 이 범주에 든다. 구약 시대에는 대체로 헌물의 사분의 삼 정도가 레위인의 생활비 지원에 사용되었고, 사분의 일 정도가 구제에 사용되었다. 이 비율은 오늘날 교회가 헌금 사용의 방향을 정할 때도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헌금은 예배의 일부
셋, 성도들의 헌금 생활은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 성도들의 모든 생활은 그가 속한 교회의 한 지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 지역 교회에 소속돼 다른 지체들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을 확인하고 지속적인 인간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지체성과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지체들에겐 지속적으로 지역 교회의 운영을 위한 재정적 책임도 주어진다. 따라서 헌금의 주력인 십일조는 본 교회에 드리는 것이 가장 건강한 헌금 생활이다. 이 외에 선교나 구제의 목적으로 돈이 필요한 경우에 본 교회에 드리는 헌금을 전용하는 것보다 구약에서 삼 년마다 드리는 별도의 십일조를 구제에 사용했던 것을 참고 삼아 별도의 헌금을 마련해 교회 바깥의 선교나 구제 활동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 지역 교회에 대한 헌금의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 교회 밖의 선교나 구제 활동에 치중하는 것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헌금은 구제라는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방편이기 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부임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헌금은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같이 드려야 한다. 이때 헌금의 주력인 십일조를 예배의 일부로서 드리는 것이 정당하다. 지역 교회가 헌금을 바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헌금이 예배의 일부임을 망각한 경솔한 행동이다.
본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십일조는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해야 한다. 예배와 헌금은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 헌금도 열심히 하고, 드린 헌금이 바른 방향으로 사용되도록 지역 교회에서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한 지역 교회로부터 마음이 떠나서 헌금 자체를 할 수 없다면 아마 예배 자체를 다른 교회로 옮겨서 드리는 것이 좋다. 요지는 헌금과 지역 교회 생활을 이원화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몇몇 대형 교회들을 제외하고 많은 교회들이 심각할 정도로 열악한 재정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별히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은 담임 목회자를 제외한 사역자 대부분이 교회 사역에서 헌신하는 정도에 비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극빈층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지역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기를 유기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말 3:8∼9)이라는 말라기 선지자의 비판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십일조 헌금을 교회 밖의 용도로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거침없이 말하기를 이제 자제할 필요가 있다.
 
<빛과소금>이 '생명 넘치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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