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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스킨십, 어디까지 괜찮나요?
노리터 | 2019년 05월호
  • 성 性 SEX
    ‘성’은 제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오랜 기간 고민한 이슈였어요. 아니, 저 또한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29살에 결혼할 때까지 거의 15년 동안 이 문제로 힘겹게 싸웠죠. 저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요. 얼마 전, 상담 프로그램에서 함께 사역하는 목사님, 전도사님, 청소년들과 이 주제에 대해 나누면서 이것이 모든 사람의 고민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청소년기가 되면 여자는 월경을 시작하고 남자는 정자를 생산하는데, 이런 변화와 함께 성적인 욕구가 생기고 이성에게 호감을 갖게 돼요. 이런 성적 욕구가 나쁜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까요. 성적 욕구를 통해서 남녀는 친밀해지고, 성적 행위를 통해 자녀를 만들고, 그렇게 창세기의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게 되죠. 

     

    정확하지 않은 답 vs. 정확한 답
    댓글에도 선한 댓글이 있고 악한 댓글이 있듯 성적 욕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해서 그 행위가 다 선한 것은 아니에요.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끌리는 대로 본능을 따르려는 악함이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손을 잡으면 포옹하고, 포옹을 하면 입을 맞추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런 욕구를 주신 의도를 잘 알고,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성경적이고 어디까지가 세상적일까요? 아쉽게도 성경은 스킨십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주지는 않아요. 대신, ‘성’에 대한 지침들은 많이 제시하죠. 히브리서 13장 4절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음란하지 말 것을 경고해요.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은 결혼 관계 안에서의 성적 행위만을 허용하죠. 이외에도 출이집트기 20장, 사도행전 15장, 고린도후서 12장과 갈라디아서 5장 등 많은 구절에서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간음과 간통을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이러한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순결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성적 행위에 있어서도 그분의 질서와 뜻에 따른 삶을 살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선택, 나의 기쁨 vs. 하나님의 기쁨
    그럼, 반대로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나 해볼게요. 여러분은 이성과 교제할 때 스킨십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마도 가능한 스킨십의 정도는 개인에 따라 다를 거예요. 그 이유는 생각의 기준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다시 질문할게요. 스킨십의 가능 범위를 판단하는 성경적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기준으로 살아가며 그리스도 예수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의미해요. 성경에서 말하는 성적 행위의 기준은 ‘결혼 유무’죠. 이것은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성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기준이에요. 그중에서도 청소년기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성숙하게 생각하기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스킨십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아요. 스킨십의 경우에도 사랑해서 한다기보다 호기심에 가까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스킨십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 봐 어쩔 수 없이 허용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친구가 그런 요구를 받았다면, 그것은 친구를 지켜주고 아껴주려는 것이 아니라 성적 호기심 때문인 것을 기억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그 만남을 유지할지 말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영적, 정서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너무 고리타분하다고요?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친구의 말처럼,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다수의 의견이나 대세가 아닌 성경이어야 해요.
     안타깝게도 세상은 점점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거나 다수의 생각이 기준이 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내가 행복하면 괜찮고, 내가 만족하면 된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런 세상의 가치관들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구별되어야 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이 기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랄게요.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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