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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소외된 친구와도 잘 지내고 싶어요
노리터 | 2019년 03월호
  • 3월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죠. 그런데 새 학기라고 해서 마냥 설레기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상담센터에 따르면,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9월에 대인관계에 대한 상담이 급증한다고 해요. 특히 새로운 친구와 교사를 만나게 되는 3월에는 대인관계 상담이 2월 대비 40%(8,336건 → 11,712건)나 증가했다는 결과가 있어요. 상담 내용은 주로 부적응, 교우관계, 따돌림 및 왕따, 무섭거나 싫어하는 교사와의 만남, 불안감 등이 주를 이뤘다고 하고요. 새로움에 대한 설렘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 혹은 기대와 반대인 상황으로 인한 두려움이 큰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신학기가 되면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는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많이 만나곤 해요.

     

     사실, 많은 친구들이 친구를 사귈 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사람, 관계 맺기 편한 사람에게 다가가곤 해요. 그럼 점에서 저는 친구를 칭찬하고 싶어요. 다른 친구를 통해 본인의 필요를 채우려고 하기보다 소외된 친구나 성격이 맞지 않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선한 마음이 친구에게 있고, 또 그런 고민 끝에 말씀 안에서 해답을 찾았기 때문이에요. 아마도 친구는 힘들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친구를 대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어요. 창조 때의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였지요. 아담과 하와 역시 비교하고 시기하고 지위의 높낮이를 따지는 지금의 인간관계와 달리 온전하게 연결된 관계였고요. 하지만 아쉽게도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들어가 죄를 짓게 된 후부터 모든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어요. 왜 선악과를 먹었는지 물어보시는 하나님께 “저 여자가 먹으라고 했어요”라며 죄를  아내 탓으로 돌렸죠. 완전 쫄보 아닌가요? 이렇게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하나님과 인간의 온전한 관계를 깨어지게 만들었고, 당연히 사람과의 관계 역시 깨어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성경대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간 인물들 중에는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 사람들이 많아요. 
     대표적인 예는 다윗이에요. 사울을 피해 숨어 지낼 때 그에게 사람들이 찾아 왔어요. 첫 번째 부류는 그의 가족이고, 두 번째 부류는 400명의 사람들이었지요. 사무엘상 22장에 보면 그들을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라고 소개해요. 훈련 받은 군인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을 다윗에게 그들은 오히려 짐이 되는 존재들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가족을 다른 나라 왕에게 정중히 부탁한 뒤 400명의 사람들을 거두었답니다.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늘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먼저 찾아가 만나주셨어요. 하루는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어요.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은 당시에 외면 받던 세리와 천대 받던 죄인들이었지요.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정죄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요. 죄인인 우리는 누군가를 보며 항상 내 입장에서 생각하곤 해요. 그러고는 나와 맞는 친구, 안 맞는 친구를 구분하죠. 그런데 사실 내 마음을 모두 이해하고 성격도 딱 맞는 친구는 존재하지 않아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오늘 나와 맞았던 친구가 내일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오늘 친했다가도 내일은 원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친구를 대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기준이 있어야 해요. 그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고 부패한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새 학기를 맞이하는 우리 친구들의 기도 제목이 바뀌었으면 해요.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뒤로하고, “내가 ‘좋은 친구’, ‘좋은 제자’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이죠.
     그럼, 어떤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닮아서 친구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삶으로 보여주는 친구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친구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친구를 반에서 찾아보세요. 그리고 함께 학교를 위해, 선생님을 위해 그리고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공동체 안에서 선한 일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얼마 전 부산의 한 학교에서 귀한 운동이 시작되었어요. 하나님께서 함께 기도하던 친구들에게 소외된 친구들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급식 시간에 혼자 밥을 먹는 친구에게 다가가 함께 밥을 먹으며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이 따뜻해졌고, 이런 친구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도했어요. 이 친구들처럼 모든 sena 친구들이 성격, 성적, 필요를 기준으로 친구를 가르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두를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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