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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금은 노래할 시간 김복유가 꺼내놓은 그의 보물들
CCM 싱어송라이터 김복유 | 2018년 10월호
  • #성경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싱어송라이터
    #잇쉬가 잇샤에게
    #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다
    #그땐 우리


    취재 | 한경진 기자 · 사진 | 김주경 기자

     

    교회를 정말 좋아하는 한 중학생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만 되면 둘러싸고 괴롭히는 아이들 때문에 매일이 지옥 같았지만, 교회에 있으면 모든 게 좋았습니다. 교회에는 장의자를 기다랗게 붙여놓고 같이 탁구를 치며 노는 친구들이 있었고, 또래처럼 섞여 놀다가도 진지하게 말씀을 전하시던 든든한 교역자들이 있었으며, 자식들 대하듯 해주시는 가족 같은 교인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졸리면 자고 눈을 뜨면 기도하고 찬양하고 싶을 땐 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는 그만의 기도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놀다 놀다 더 놀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주일 저녁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오늘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소년은 열등감 투성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인데, 어릴 때 한 쪽 턱의 성장판을 다쳐 비대칭이 된 얼굴이 콤플렉스였고, 그렇다고 가정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 뭐 하나 괜찮다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시절, 예수님이 다가와 주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는 이 소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을까요?
     중학교 2학년 교회 수련회. 찬양을 하던 중에 강렬하게 느낀 그분은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예수님이 맞았습니다. 성경퀴즈 정답으로, 성경 속에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예수님은 ‘정말 살아 계신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너무나 따뜻하고 좋은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도 힘든 건 여전했고, 괴롭히는 친구들은 계속 괴롭혔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찬양할 때마다 따뜻한 예수님의 품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분의 품에 딱 붙어 있지 못한 날도 많았습니다. 여전히 열등감에 시달렸고, 그나마 노래는 조금은 괜찮게 하는 것 같아서 노래 실력으로 돋보이려고 애쓰다 사람들의 정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수’이십니다. 겉멋이 잔뜩 들어 노래하던 소년을 나무라기보다 “자유해”라고 다독이셨고, 청중 앞에서 노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아시고는 “너 노래 해보고 싶니? 그럼 해 봐”라며 그 길을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소년은 지금 그분이 허락하신 길 위에서 신나게 뛰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김. 복. 유.
     얼마 전 있었던 그의 공연이 기독교 공연으로는 유일하게 예매사이트 티켓랭킹에서 1위를 찍었을 정도로 요즘 가장 핫한 CCM 아티스트입니다. 그의 처절했던 시절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CCM계를 씹어먹는 대형 신인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찬양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주섬주섬 나가버린 적도 있었고, CCM 오디션에서 무려 대상을 받았음에도 노래할 기회가 적었던 시간들, 밴드를 결성해 거리 공연을 나서려 해도 그마저 쉽게 성사되지 않는 시간들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노래하는 일을 허락하시면서 “언젠가 너에게 청중을 줄게”라고 하신 약속을 믿었지만, 그게 4년 넘게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도대체 언제 청중을 주시는 거예요”, “아무도 안 들어요” 툴툴대는 마음을 다독이며 공연하던 어느 날, 모니터 스피커가 꺼져 버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던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복유야, 내가 듣고 있어. 나를 위해 노래해 줄래? 내 품에서 노래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그때 그는 알았습니다. 자신이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에게 청중은 하나님 한분이면 충분하다는 걸. 그 순간부터 그의 노래에 힘이 빠지고 진짜 찬양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청중이 한 명이어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신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들으라고 찬양하던 매일매일이 쌓여,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레바논에서, 중국에서, 모로코에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너의 삶이 춥지 않기를”. 언젠가 어떤 분이 그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 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돌아보니 그의 삶은 정말 춥지 않았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고, 게다가 그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님이 보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힘겨웠던 경험들이 변해 그의 노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아픔의 시간이 없었다면, 성경 속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만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인 것을 노래로 나눌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그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도 저마다에게 주신 보물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두렵기도 합니다. 자신의 말에, 공연에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게 될까 봐. 그냥 공연이 좋고 노래가 좋아서, 혹은 생계 때문에 계속하게 될까 봐. 청중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애쓸까 봐.
     그래서 그는 곧 모든 걸 잠시 멈추고 레바논으로 가려고 합니다. 선교도 아니고 공연도 아닌, 그냥 조용히 하나님께 묻는 시간을 만들고자 함입니다. 소설 <오두막>에 나오는 주인공 ‘맥’이 하나님과의 시간을 보낸 뒤에 “이제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여기 있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하기 때문에 뭘 해도 괜찮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것도 포기해져 있고, 저것도 포기해져 있고, 여기도 있어 보고, 저기도 가 보고, 부유하게도 되었다가 가난하게도 되어 보는 그런 삶. 지금은 노래하는 시간을 허락해 주셨지만, 설사 그것을 내려놓게 하시더라도. 훗날 누군가가 “예전처럼 공연 다시 해보고 싶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그때 너무 행복하게 원 없이 해 봐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청년이 된 김복유의 꿈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던 네게
    아무도 오지 않았던 네게
    그 누구도 찾지 않았던 네게
    내가 지금 간다

    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다
    기쁨에 차 말을 건다
    하늘 보좌 내려놓고 그래 여기에 왔다고
    넌 내게 다시 이리 재촉한다
    그 물을 내게 달라 한다
    넌 이미 보았다. 그 물이 여기에, 바로 내 안에 있다.

    - <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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