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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교회 수련회와 학원 특강, 어디로 가야 할까요?
<교수님 궁금해요> | 2017년 07월호
  • Q. 이제 곧 방학인데요. 이때마다 늘 저를 고뇌하게 하는 것이 있어요.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교회 수련회 날짜와 학원 특강 날짜가 겹치는 거 있죠? 솔직히 수련회보다 특강 쪽이 더 끌려요. 특강에 빠지고 수련회를 가자니 다른 애들한테 뒤처지는 것도 문제지만 밀린 진도 따라가려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거든요. 또 수련회를 한 번 간다고 해서 딱히 은혜를 많이 받는 것 같지도 않고 매번 그냥저냥 지내다 오는데, 다녀오면 피곤하기만 해요. 그렇다고 수련회에 빠지자니 뭔가 꺼림칙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저는 우리 친구의 고민을 들으며 너무나 큰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껴요. 한국 사회와 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기성세대에 속해 있는 저의 책임도 크니까요. 사실, 학생이라면 학기 중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방학에는 공부를 잠시 중단한 채 쉬면서 종교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 것이 건강해요. 물론 학기 중에도 낮에는 열심히 공부하되, 해가 진 이후나 주말에는 쉬어야 하고요. 방학 기간에, 그것도 짧은 며칠조차 편안한 마음으로 수련회에 참석할 수 없을 만큼 공부의 부담을 주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어요. 아마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친구가 이런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박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 친구가 수련회에 참석하느냐 아니면 학원 특강에 참석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한쪽은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만일 우리 친구가 주일예배와 학원 특강 사이에서 학원 특강으로 마음이 기운 거라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성경 말씀에 반하는 분명한 잘못이에요. 하지만 수련회의 경우는 주일예배에 대한 명령과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심각한 죄가 되지는 않지요. 사실, 이 문제는 우리 친구가 기도하며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예요.
     다만 저는 우리 친구가 학원 특강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수련회에 참석하기로 결단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그렇게 권하는 이유는 우리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압박을 이겨낸 다니엘이나 골리앗의 압박을 이겨낸 다윗처럼 시대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하나님의 강한 자녀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우리 친구가 학원 특강을 선택한다고 해도 저는 그 결정을 존중할 거예요. 그러니 이제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주세요. 

     먼저 말씀을 몇 구절 읽고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기로 해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3-34). 한 군데 더 읽어 볼까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우리 친구도 잘 아는 말씀들이지요?

     이 두 구절에서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세 가지의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첫째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거예요. 둘째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셋째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이 세 가지 교훈에 지금 우리 친구의 상황을 대입해 보기로 해요. 

     첫째로 생각해 볼 문제는 우리 친구에게 먼저 구해야 할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하나님)의 의가 무엇일까 하는 거예요. 지금 친구 앞에는 며칠 동안의 학원 특강, 그리고 수련회라는 선택지가 놓여 있어요.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잠시 생각해 볼까요? 사실, 학원에 가서 지식을 배우는 것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배우는 모든 학문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에 관한 것들이고, 모든 것에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녹아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수련회 활동은 어떨까요? 수련회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교제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는 모임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의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요. 그러면 창조세계에 대해 배우는 것과 예수님에 대해 배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둘 다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당연히 예수님에 대해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더욱이 우리 친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하는 데 쓰고, 예수님에 대해 배우는 일에는 극히 작은 시간을, 그것도 학교나 학원 공부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쓰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런데도 일 년에 겨우 며칠 정도를 예수님을 아는 친구들과 교제하고 예수님에 대해 배우는 데 쓰는 것을 아깝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조금 인색한 것 아닌가요?
     설령 수련회가 알차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저는 수련회를 선택하는 편을 권해주고 싶어요. 우리 친구가 학원 특강을 내려놓고 수련회를 선택한 행동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더 우선순위에 둔다는 뜻이니까요. 이런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훌륭한 믿음의 훈련이 되고, 이를 통해 우리 친구의 믿음도 점점 자라게 될 거예요.
     둘째로, 우리 친구는 내일 일을 걱정하고 있어요. 학원 특강을 놓치면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고 나아가서 대학입시에도 불리할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주님은 일단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했다면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세요. 하나님은 그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택하는 친구의 결정을 최고의 선택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분이죠. 당장 눈앞의 1, 2점에 연연하다 보니 성적이나 결과가 크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은 성적이나 대학입시라는 관문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마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걸 기억했으면 해요. 물론, 알아서 인도하실 거라 믿고 아무런 노력도, 수고도 하지 않는 건 안 되겠지만요.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려고 해요. 제가 네덜란드에서 박사학위 논문 쓰는 것을 일 년 남겨 놓았을 때의 일이에요. 저는 그때 공부하느라고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위궤양까지 얻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살던 곳에서 고속도로로 3시간이나 떨어진 독일의 한인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잠시 담임목사를 맡아 달라는 긴급한 요청이 왔어요. 담임목사를 맡으면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공부에 차질이 생기게 돼요. 그러나 저는 어려움을 만난 교회를 외면할 수 없어서 마음 단단히 먹고 그 요청을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1년 동안 자동차로 왕복 6시간이나 걸리는 독일 교회를 매주 오가면서 교회 일을 감당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적인 방법으로 도우셔서 교회도 열심히 섬기고 박사학위도 정해진 기간 안에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지요.
     셋째로, 주님을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세상은 선한 것보다 악한 것에 더 빨리 반응하고, 더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아가다 보면 손해를 보고 곤란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편안하고 쉽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죠.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항상 손해만 보고 어려움만 당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좁은 길을 가는 친구를 하나님께서는 결국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실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친구가 학원 특강을 며칠 빠지는 것으로 미래가 어그러질 일은 없다고 확신해요.  

     이제 제 권고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우리 친구가 수련회를 선택하든, 학원 특강을 선택하든 기도하는 가운데 매우 신중하게 선택하리라 믿어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저는 친구의 결정을 존중해요. 다만 이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친구가 다니엘, 다윗, 요셉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무엇이 옳은지를 늘 고민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진지하게 삶을 살아갔으면 해요.  

     

    글│이상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모델│김채림, 안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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