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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농인과 청인을 잇는 다리
수화통역사 고경희 | 2017년 03월호
  • "수화통역사"란,
    농인들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어(수화 언어)를 통해 농인과 청인이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을 말한다. 수화통역사는 농인의 수어를 보고 음성으로 통역하는 음성통역과 청인의 음성언어를 수화로 통역하는 수어통역이 모두 가능해야 한다.

     

    취재│김지혜 기자 · 사진│김주경 기자

     

    수화통역사 고경희
    은광교회 예배수화통역사
    솔라피데 수어통역연구소 대표

     

     

    Q. 선생님은 수화를 어떻게 접하게 되셨나요?

    저는 대학에서 영양학을 전공했어요. 그렇다고 제 주변에 농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10년 동안 영양사로 일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수화가 제 삶에 찾아왔어요. 길을 걸어가는데 ‘벼룩시장’이라고 일자리 정보가 많이 들어있는 신문이 발에 차인 거예요. 주워서 펼쳤는데 ‘기초반 수화교실’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마침 그날이 개강 날이더라고요. 재밌겠다 싶어서 바로 찾아갔죠. 그게 수화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15년째 수화통역사의 길을 걷고 있네요.

     

    Q. 전혀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셨는데, 영양사로 일한 10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으셨어요?

    전혀요. 오히려 10년 동안 영양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서 농인들에게 음식 강의도 하고, <수요미식회>나 <집밥 백선생> 같이 요즘 유행하는 음식 관련 방송 프로그램도 맡을 수 있었죠. 분야가 전혀 달라 보인다고 해도 그동안 쌓았던 경험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취미생활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종종 SNS로 먹방을 수화로 찍어서 올리거든요. 그걸 보고 제 수화 표현이 재미있다며 연락해오는 분들도 있어요. 그 모든 경험과 취미를 버무리셔서 ‘수화통역사 고경희’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요.

     

    Q. 그렇게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놀랍네요. 수화통역에도 분야가 굉장히 많던데요,

    선생님은 어떤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거우신가요?
    저는 예배 통역과 방송 통역할 때가 제일 좋아요.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옆에 서서 수화로 통역하거든요. 그때 농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거나 울컥하는 걸 볼 때면 하나님의 일하심과 희열을 느껴요. 제가 통역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농인들을 보면 정말 보람차기도 하고요. 방송 같은 경우, 저는 예능을 많이 해요. 이때 제 끼와 재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예를 들면 <너목들>에서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과 음치를 수화로 구별할 수 있게 해야 하거든요. 그럴 때는 오롯이 표정으로 전달해야 하죠. 그래서 전 정말 최선을 다해 망가져요(웃음).

     

    Q. 수화하는 분들이 표정이 풍부한 게 이유가 있었군요. 혹시 풍부한 표정을 위해 연습도 하시나요?
    연습을 하기보다는 농인들을 많이 만나봐야 해요. 농인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며 대화하다 보면 그 표정이 어느새 몸에 녹아들거든요. 친한 친구의 말투를 닮아가는 것처럼요. 그래서 수화만 봐도 누구랑 친한지 다 알 수 있어요. 수화에서 표정은 음색과 같아요. 수화표현과 얼굴표현이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의 수어가 되거든요. 많은 농인들을 접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표정들이 나오게 돼요.


    Q. 수화도 하나의 언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지네요.
    참 재밌는 게 농인들도 70대 어르신과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돼요. 수어에도 은어가 있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말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새로운 단어를 배우게 되면 신나게 몸으로 연습하며 익히곤 해요. 작년부터는 신설된 총신대학교대학원 수화통역트랙 1기로 들어가서 수화를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Q.수화통역사를 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신혼 때였어요. 친한 농인 언니한테 밤 12시에 집에 좀 와 달라고 문자가 온 거예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친정엄마가 와 계시더라고요. 엄마랑 대화하고 싶다며 부른 거였어요. 당시 언니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엄마, 내가 왜 농인이 됐어?”라는 질문을 그때서야 할 수 있었던 거죠. 한 가족이었지만 엄마는 수화를 모르는 청인이었기 때문에 엄마와 딸 사이에 대화는 “밥 먹어”, “자” 이런 게 다였던 거예요. 그때 한 새벽 2시까지 통역을 해준 것 같아요. 그로부터 한 달 후에 언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그 대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엄마와 딸의 진솔한 대화였던 거죠. 그때 제가 밤이 늦었다고, 신혼이라고 핑계 대고 안 갔다면 평생 후회했을 거예요. 그때가 되게 기억에 남네요.

     

    Q.마지막으로 수화통역사로서의 비전을 나눠주세요.
    우리나라에 영어를 듣고 바로 수화로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그래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고 이것을 다시 수화로 통역해야 할 때가 많죠. 통역될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요약되기 때문에 통역 과정을 거치는 만큼 전달되는 내용은 줄어들어요. 그래서 저는 영어를 듣고 바로 수화로 통역하고, 또 국제수화를 한국어로 음성통역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어요. 특별히 농인 선교에도 관심이 많아요. 제가 항상 하는 기도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폭발적인 영어실력과 국제수화 실력을 주신다면 세계농인선교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요. 정말 감사하게도 정말로 영어와 국제수화 실력이 늘어서 이 방면으로도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어요. 외국에서 귀빈들이 오실 때 수행통역을 많이 가거든요. 그럴 땐 더더욱 친절을 베풀고 기도하면서 이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에서 복음을 전하기도 해요. 드러나는 열매는 아직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기도하며 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맺게 해주시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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