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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수니스트 김새미는 하나님 빠수니스트다
바수니스트 김새미 | 2017년 02월호
  • 바수니스트
    김새미는
    하나님
    빠수니스트다


    취재│한경진 기자
    사진│김주경 기자

     

     

    ♬♪ sena 하던 김새미

    청소년 시절에 저는 그냥 모범생이었어요. 하라는 공부 열심히 하고, 교회생활도 열심히 하는 아이였죠. 부모님이 엄하신 것도 있었지만, 목회를 하시는 부모님이 지하 개척교회에서부터 수고하시는 걸 봐왔기 때문에 늘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 저도 sena로 큐티를 했었어요.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큐티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죠. 청소년기에는 읽을 만한 신앙서적이 별로 없는데, sena에 기사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 바순과 만난 김새미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편인데요.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바순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진로 상담을 하면서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생각해 봤는데, 그게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고민하고 알아보던 끝에 어머니가 아시는 한 사모님을 통해서 바순이라는 악기를 소개받게 됐죠. 바순은 그때 처음 본 거였어요. 낯선 악기였는데 배우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게다가 선생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라 자신감이 붙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진도도 훅훅 나갔고요. 그때 학교 가는 시간만 빼고 밤늦게까지 교회에서 매일 연습을 했어요. 당시에 교회가 지하에서 2층 건물로 이사했을 때였는데 비만 오면 천장에 물이 새서 종이컵을 받쳐놓고 물을 비워가면서 연습하고 그랬죠.

     

    ♬♪ 음대에 간 김새미

    3년 동안 매일 연습하고 준비한 끝에 감사하게도 목표하던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막상 입학하고 보니 대학생활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가장 힘든 건 술 문화였어요. 연주회가 끝나면 늘 술자리가 있는데, 선배들은 물론 교수님까지 참석하시는 자리라 피하기가 어려웠어요. 곤란한 상황을 늘 피하게 해주셨지만 그 순간들은 정말 힘들었죠. 뿐만 아니라, 대학에 와 보니 친구들은 모두 유명한 예고 출신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영재들이더라고요. 저는 뭐든 처음 해보는 것들인데, 그 친구들은 이미 다 익숙한 상태였고요. 그 차이를 줄이려고 시험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정말 많이 준비를 했었어요. 그때 마음이 힘들고 갈급하니까 하나님의 위로가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믿는 친구들을 몇몇 붙여주셔서 그 친구들과 매주 기도모임을 하며 힘든 음대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었죠.

     

    ♬♪ 물맷돌을 든 김새미

    바순을 시작하고 나서는 크고 작은 두려움이 늘 있었어요. 늦게 시작한 데다가 잘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고, 클래식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달리 저는 찬양을 연주하는 게 더 좋아서 해본 곡도 많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형편에 맞는 악기를 구해야 해서 중고 악기나 저렴한 악기를 사용했어요. 그러다보니 입시나 콩쿨 등을 앞두고는 늘 갈급한 마음이 있었죠.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어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서 선포하는 장면이에요. 골리앗 앞에 작은 물맷돌을 가지고 나아가는 다윗의 모습이 바로 가진 것도 없고 무기도 약한 저의 모습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아갈 때 승리하게 해주신다는 확신을 부어주셨어요. 그래서 무대에 설 때면 늘 그 말씀을 되뇌면서 올라가요.

     

    ♬♪ 유학생이 된 김새미

    대학 졸업 후에 미국에서 음대로 유명한 ‘인디애나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 과정도 완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죠. 두 군데의 학교에 합격했는데, 학비에 대한 부담이 커서 제가 원하던 인디애나 주립대학보다 장학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원하던 학교에 거절하는 메일을 보냈는데요. 메일을 보신 교수님께서 제 사정을 들으시고는 전액 장학금을 허락하신 거예요. 정말 감사했죠.

     사실 유학을 꿈꾸거나 목표해서 간 것은 아니었어요. 상황을 열어주시니까 가서 최선을 다하자고만 생각했던 건데요. 유학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공부도 공부지만, 신앙적인 부분을 많이 만져주셨어요. 한인교회에서 또래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그동안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깨는 시간들을 보내게 됐죠. 함께 유학하던 실력있는 친구들과 찬양을 연주하면서 연주의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요. 그때 제가 교회에서 했던 연주를 한 친구가 영상으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주었는데요. 그 영상이 공유되고 은혜를 끼치게 되었던 게 제가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작점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 싱글 앨범을 낸 김새미

    바순 찬양 앨범은 혼자서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비전이었어요. 실제로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기획도 했었고요. 그런데 아무리 아는 사람들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스튜디오나 녹음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연주자들의 찬양 앨범 제작 사역을 꿈꾸시는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신 거예요. 덕분에 앨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죠.

     이번 앨범 중에 ‘북에서의 기도’라는 곡이 있는데요. 송솔나무 선생님이 기도하시던 중에 북한에 있는 한 성도가 성경책과 설교가 나오는 라디오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시고, 그때 들은 멜로디를 연주하신 곡이에요. 그 곡을 제가 바순 버전으로 연주해서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를 했는데요. 북한 사역을 하시는 분께서 위로와 은혜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북한에 곡을 보내도 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앨범을 통해 그렇게도 역사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놀라웠어요. 앞으로도 저는 모르지만 흘려보내시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만지실지 기대가 돼요.

     

    ♬♪ 예술하는 예수쟁이 김새미

    제가 바순으로 할 수 있는 건,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안아드리고 위로해드리는 것, 그리고 마음을 울리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순이 저음 악기이다 보니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울리는 매력이 있거든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위로하는 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저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연주를 통해 보여주는 도구가 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앞으로 저를 어떤 곳으로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어디에 있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아멘’ 하면서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으면 해요. 그게 지금 저의 기도제목이에요.  

     

    새미 양의 영상 인터뷰는 senatv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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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최봉석  2017-02-13
저는 고3 플룻 공부에 전념하는 자랑스런 아들을 응원하며 기도하는 아버지입니다. 또한 현재 새나 묵상을 하며 교회학교 중등부를 가리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남자 아이가 플룻을 한다고 중1때부터 고집을부려 어쩔 수 없이 시작하도록 햇는데 지금도 열심으로 연습하는 아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구나 생각합니다. 물론 콩쿠르 성적은 그리 좋지 않지만 교회 찬양단원으로 플룻과 피콜로,베이스기타로 봉사하는 열정에 늘 고마울뿐입니다. 교향악단을 꿈꾸며 열심으로 준비하는 아들을 응원하면서 오늘 예술하는 예수쟁이 바수니스트 김새미님의 글을 보면서 더욱 기도해야겟다고 생각햇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영원하시길 기도합니다.
윤은경  2017-02-09
바수니스트 김새미님의 인터뷰글 잘보았습니다 빠수니스트란말에 뜻을 잘알아듣지
못하고 나쁜생각이들어 오해를해서죄송
하고 많은아픔과 시련들을 거쳐 아름다운간증을 읽으며 많은위로와 주님의사랑을
느끼게해주어 간사드리고 힘있고 능력
주시는자안에서 새소망품고 전진하시는
김새미님되시길 주의이름으로 축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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