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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숨지 마, 네 인생이잖아
국제 사회복지사 김해영 | 2013년 06월호
  • 작년, 한 국제 사회복지사의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이 화제가 되었다. 척추장애와 134cm의 작은 키의 그녀가 해낸 일들을 보며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거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삶 이야기에 울고 웃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녀가 그 배후의 이야기들을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풀어놓았다. 그 이야기는 바로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취재 및 정리/ 한경진 기자·사진/ 한치문 기자, 두란노서원 출판부

     

    134cm의 척추장애를 가진 아이  

    경북 상주 산골에서 살다가 1970년대 초 서울로 온 우리 가족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고된 시집살이로 우울증을 앓던 엄마는 지겹도록 아버지와 싸웠다.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아버지가 외출하면 2남 3녀의 맏이인 내게 엄마의 화살이 집중됐다. 

    “이놈의 가시나, 쓸데없이 태어나서 내가 이 고생이야.”, “아주 나가 뒈져라!”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탓에 이유 없이 때렸고, 온 몸은 멍투성이가 됐다. 사람들은 키가 작고 등이 굽은 것과 똑바로 서지 못하고 절룩거리며 걷는 것이 다 내 탓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단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고모님을 통해 내 키가 자라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네가 태어나고 며칠 후에 친척들이 미역을 사갔는데, 네 엄마를 미워하던 할아버지가 ‘딸인데 쓸 데 없이 돈을 쓴다’고 해서 모두 혼이 났다. 그때 네 아버지가 술을 먹고 와 홧김에 밀쳐 낸다고 한 것이 너를 던진 꼴이 됐다. 이 때문에 네가 몸이 그리 되었지만, 네 아버지니 미워하지 말거라.” 아, 그랬구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아버지가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후, 내 잘못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내가 태어나 여자가 되고, 장애인이 되고, 엄마의 정신병을 가져오게 한 잘못 위에, 아버지를 죽게 한 잘못이 추가된 것이다. 나는 살림을 하고 동생들을 키우며 엄마의 자리를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날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엄마를 피해 아예 가출을 하고 말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네 살의 장애인 여자아이인 나의 첫 직업은 월급 3만원의 가사도우미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낸 지 8개월쯤 됐을 때, 집안에서 없어진 금목걸이에 대한 누명 때문에 그 집의 일을 그만 두었고, 1년 만에 돌아간 집에서도 내쫓기고 말았다. 그랬던 나에게 한 신문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무료 직업훈련생 모집. 양재, 편물, 자수, 미용. 6개월 과정’

    나는 조심스럽게 내 처지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교육원에 보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선생님들은 연필로 한 자 한 자 눌러 쓴 내 편지에 감동하셨고, 나는 그곳에서 앞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을 배워나갔다. 

     

    “내가 너의 친구란다”  

    입학할 때 종교란에 ‘자신교’라고 적을 만큼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돌같이 딱딱하게 굳은 내 마음이 기술교육원 최 선생님의 한 마디에 스르르 무너졌다. 

    “해영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삼아야 할 텐데…. 해영이가 교회를 안 간다고 하니, 내가 마음이 아프다.”

    나를 볼품없고 가망 없는 장애인 여자아이로 대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해 주신 선생님의 말에 ‘예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믿어 볼 만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 발로 직접 교회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타지에서의 힘든 생활과 중노동으로 인한 삶의 걱정을 아무도 없는 교회 십자가 앞에서 눈물로 털어놓으며 밤을 새곤 했다. 

    “얘야, 내가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믿는단다. 내가 너의 친구란다.”

    주님은 매일 밤 교회에서 울다가 잠드는 나에게 찾아오셨다. 그 눈물 끝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거기, 아주 불쌍하고 몸이 아픈 한 인간이 있었다. 해영이란 아이는 내가 보아도 가여웠다. 이 가엾은 아이를 친구 삼아 주신 예수님이 고마웠다. “예수님, 제가 드릴 것이라고는 마음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마음을 드리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사람마다 인생의 기회가 찾아온다더니 나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왔다.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하던 내게 ‘전국장애인 기능대회’에 교육원 대표로 나가 보라는 제안이 온 것이다. 결국 만 16세였던 나는 약 4년간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조교사 일하고, 주로 밤과 새벽에 연습하면서 나가 본 첫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그 후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아닌 일반 청소년이 모이는 전국 대회에도 나가게 됐고, 그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남미에서 열리는 세계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 국가 대표로 출전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멀리 타국의 대회장에서 전혀 사용법이 다른 기계들을 만나 당황했지만 대회 전날 꼬박 밤을 새워 연습했고,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나는 그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었다. 

    “만 19세. 전국대회 금메달 2개, 세계대회 금메달 1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산업훈장 수여.” 일천한 가정환경과 장애라는 배경을 딛고서 이루어 낸 성공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공에는 운이 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살아온 세월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계셨던 것이다.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 하나님은 십대 중반에 바친 마음, 가진 게 없어 마음을 드리겠다던 그 기도 대로 내 마음을 가져가겠다고 하셨다. 그와 동시에 기억 저편에서 아주 짧은 광고가 뚜렷하게 다가왔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일할 양재, 편물 자원봉사자 모집.’

    아프리카 보츠와나... 그곳에 살면서 나는 참 빛을 찾기 시작했다. 기술학교를 세우고 재단, 재봉 등을 가르치며 만난 보츠와나의 십대 학생들은 사연이 사람 수만큼 가지각색이었다. 가만히 들어 보니 내 어린 시절의 아픔들이다. ‘그래, 얼마나 힘들고 아프니?’ 내가 만난 보츠와나 학생들은 그저 무지했고 순진했고 가여웠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네 번째 신입생을 받고 한 학기를 마친 후, 이런저런 이유로 사역자들은 다른 사역지로 떠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어떤 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학교의 책임자는 1994년 4월에 교사와 재학생들을 모두 돌려보냈고, 나 혼자 남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혼자 두어 달을 지내던 어느 날, 돌려보낸 여학생들이 찾아와 학교에 있게 해 달라고, 남은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나는 이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었다. 나 혼자 남은 것이 아니라 나 혼자 뛰고 있는 것이라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스도인은 남들이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숨지 마, 네 인생이잖아

    10년의 세월이 쏜 살같이 지나갔다. 보츠와나의 학교는 재학생, 교사, 직원들이 80명이나 되는 큰 학교로 발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는 데 있었다. 처음 학교의 책임자가 되어 가졌던 간절함과 주님의 은혜를 바라는 뜨거운 열정이 안일한 일상생활에 묻혀 버린 것이다. 이 위기감은 10여 년 간 학교를 운영한 경험을 통해 전문 교육을 받고 싶은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로 바뀌었고, 나는 곧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나의 유학 생활은 하나님이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시는지를 체험한 시간이었다. 거의 무일푼으로 뉴욕에 와서 나약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원의 모든 과정을 마치기까지 하나님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나를 맡기신 것이다. 내 형편을 헤아려서 내 주머니에, 가방에 돈을 넣어 준 사람들의 도움은 전적으로 주님이 나를 돌아보신 은혜였다. 

    2012년 8월, 나는 밀알복지재단 희망사업본부의 본부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하며 겁도 없이 남의 나라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겁이 없겠는가! 두려움과 낯선 땅에 대한 불안이 내 등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그 어디에도 나 혼자 보내신 적이 없다. 오히려 먼저 가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큰 키에 곧은 등을 갖고 싶으냐고 묻는다. 물론이다. 하지만 그래서 또 놓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견딜 수 있는 장애, 고통, 어려움이 있는 것은 내 삶의 축복이라고 믿는다. 내가 연약할수록 그 사랑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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