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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로봇다리 세진이, 그리고 엄마 이야기
장애인 수영 선수 김세진 | 2010년 09월호
  • 작년 말쯤, MBC에서 방영하는 ‘사랑’이라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후 그 잔상이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두 다리와 한 팔이 없는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듯 밝은 얼굴로 초롱초롱한 눈에 미소를 가득 담고 있던 중학교 1학년 아이 세진이. 그 아이 속에 있던 ‘긍정의 힘’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모든 것은 강인한 어머니, 그리고 그 이전에 세진이를 만드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힘이었다. 

    취재/ 한경진 기자·사진/ 정화영 기자, 양정숙 어머니, 조선북스 편집부 

     

    어머니와 세진이가 만난 특별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고 싶어요.

    어머니 :  아버지께서 항상 나눔과 봉사를 강조하신 터라 어려서부터 저는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하루는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보육원 앞에 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서 울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달래줘도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보육원 선생님이 저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맡기셨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저에게 안기는 동시에 울음을 멈추더라고요. ‘이 아이가 내 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포대기를 연 순간 다리와 손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발이 너무 작고 귀엽게 보이더라고요. 그 후로 1년 넘게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세진이를 돌보다가 정식으로 입양을 했어요. 

     

    세진이의 누나도 세진이를 각별하게 돌본다던데요?

    어머니 :  세진이의 누나가 열 살 때 세진이를 입양했는데요. 정말 저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세진이를 돌봤어요. 심지어는 중학교 1학년이 되자 학교를 관두겠다고 하더라고요. 세진이만 혼자 두고 학교에 못 가겠다고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인생 계획표를 만들어 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가지고 왔죠. 결국 저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딸의 결심이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허락해 줬어요. 그 이후로 딸은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을 매일 교실에 데려다주고는 교실 문 앞에 앉아서 자기 공부를 했어요. 그러면서 2년 만에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로 마치고 계속 세진이를 돌봤죠. 

     

    학교에 다니다 보면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머니 :  그럼요. 길거리를 지나다가 아이들이 “엄마, 쟤 왜 저래?”하고 물으면 엄마들이 “너도 말 안 들으면 저렇게 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말들이 정말 상처가 됐죠. 하루는 1학년 때, 6학년 형들이 세진이를 화장실에 가두고 망치로 의족을 다 깨뜨려버린 일이 있었어요. 의족이 망가진 세진이는 혼자 화장실에 갇혀 나오지도 못했죠. 결국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햄버거를 먹이면서 타이르고 대화를 한 끝에 사과를 받아낸 적도 있어요. 

    세진이 :  옛날에는 학교에 가면 애들이 ‘괴물’이라고, 또 거짓말을 많이 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라고 놀리곤 했어요. 너무 속상해서 밤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다시는 거짓말 안 할테니까 다리 좀 만들어 주세요.”라고 몇 년을 기도했죠. 그런데 그런 기도를 하면 할수록 저만 속상해질 뿐이었어요. 지금은 하나님이 저의 생각을 바꿔주셨죠. 저는 모든 걸 다 가졌는데 두 다리와 손만 없을 뿐이라고요. 모든 사람에게는 단점이 있고 부족한 면이 있잖아요. 저 역시 그 세 가지만 빼고 다른 건 다 가진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 중이라고요?

    세진이 :  네, 어릴 때 척추측만증 때문에 재활훈련을 하려고 수영을 시작했는데요. 처음에 물에 들어갔을 때는 물이 너무 싫었어요. 저희 엄마가 아주 독한(?) 분이신데, “이거 아니면 못 걷는다”라면서 저를 물에 빠뜨리곤 하셔서 매일 울면서 수영을 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속이 너무 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땅에서는 의족을 해야만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데 물속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면 어디로든 갈 수 있잖아요. 그때부터는 물속에 있을 때가 가장 자유롭고 좋았어요. 그러다가 결국 수영 선수의 길까지 오게 됐죠. 

     

    수영이 좋은 것과 선수로 수영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 같은데요?

    세진이 :  맞아요.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으면서부터는 훈련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환경도 그렇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수영 선수가 거의 없고, 연습할 수영장과 코치를 구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무언가를 해야 할 때마다 엄마는 집을 팔기도 하고,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일을 하시면서 저를 뒷바라지 하셨어요. 

    어머니 :  저는 돈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정말 하고 싶다고 하면 응원하고 또 믿어주는 거죠. 그래서 세진이가 일반인도 힘들다는 로키산맥에 등정한다고 했을 때,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모두 지원해줄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수영이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 두라고 말해요. 물론 단순히 힘들어서, 하기 싫어서 그만 두는 건 안돼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항상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좋은 점, 나쁜 점들을 종이에 적게 해요. 그러다보면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거든요.

     

    환경이 어렵긴 해도 성적이 아주 좋다고 들었어요.

    어머니 :  네, 작년에 영국에서 열린 수영대회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를 따기도 했어요. 지금은 런던 올림픽을 향해서 기록을 점점 단축하려고 훈련하고 있구요. 하지만 저는 금메달보다도 겸손을 가르치고 싶어요. 지금 잘한다고 모든 메달을 싹 쓸어오거나 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야 나중에 갖지 못했을 때 생기는 상실감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잘한다는 교만에 빠질까 봐요. 

    세진이 :  저도 런던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꼭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그래서 ‘IOC 위원’이라는 저의 꿈을 꼭 이루고 싶어요. 항상 세계대회에 나가면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했는지도 모르고, 금메달을 따도 애국가와 태극기가 없어서 항상 저희가 직접 준비하곤 하죠. 가끔은 엄마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애국가를 라이브로 부르기도 한다구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해서 IOC 위원이 되어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였으면 하고, 그것보다도 먼저는 저처럼 장애가 있고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통해 희망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하나님께 어떤 자녀가 되고 싶은가요?

    세진이 :  저는 항상 무엇이든지 두려운 게 있으면 하나님께 항상 함께해 달라고 기도해요. 저는 너무 약하니까요. 그래도 제가 주님의 아들이라는 게 너무 좋아요. 늘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시는 아들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 보육원 동생들이 있는데요. 그 아이들에게 아빠, 형 같은 존재가 되고 싶고,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어머니 :  아무리 힘들어도 아침에 일어나서 옆에 잠자고 있는 세진이와 딸의 얼굴을 보면 너무 행복해요. 힘든 생각이 다 사라지죠. 하나님은 오죽하시겠어요?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저와 우리 가족, 그리고 이 책을 보는 모든 친구들 역시 하나님께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우리 친구들이 공부도 좋고, 잘 사는 것도 좋지만 그저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안겨주는 존재라는 걸 기억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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