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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웃음, 그리고 영혼의 기쁨을 전하는 개그우먼
개그우먼 이성미 | 2010년 02월호
  • 청소년 친구들 중에는 어머니에게 “너 이러려면 뭐 하러 태어났니?”, “내가 너 낳고 미역국 먹은 게 아깝다” 등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개그우먼 이성미 역시 그런 어머니였다. 2002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아들과 유학의 길로 떠난 그녀는 첫 아들을 키우며 아들을 축복하기보다 혼내기 바빴다. 그러던 그녀가 기도 중에 변화하면서 아들을 품고, 또 이 땅의 청소년들을 품게 되었다. 7년 만에 돌아온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보자!        취재/ 이요한 부편집장·사진/ 한치문 기자

     

    “하나님 저 왔어요”

    교회에 처음 갔을 때가 아마 88년도였던 것 같아요. 말이 교회에 나간 것이지,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교회 들어가면 ‘하나님 저 왔어요’라고 인사하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이렇게 교회에 다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40일 작정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11일째 방언이 터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교회생활이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당시에 함께 활동하던 분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단어가 ‘순종’이었는데, 아직까지 그 단어는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그러다가 벤쿠버에서 3년 6개월 동안 새벽기도를 하면서 성령세례를 받고 난 후, 더욱 성장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 같아요.

     

    한국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사인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캐나다에서 생활한 지 5년 반 정도 되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사인을 받았어요. 한번은 잠시 한국에 들어와 홍대 앞을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의 현대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낮은 죽어있고 밤이 살아있는 현실이 참 마음 아팠죠. 그런데, 이 때 학교 앞에 어떤 여대생이 술에 만취된 상태로 쓰러져 있는 거예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쓰러져 있는 여대생을 무릎으로 괴고 앉아서 마음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제 눈에 보인 거예요. 그때, 그런 한국의 현실을 보며 ‘하나님 한국에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하고 1년 반 후에 한국에 들어오게 됐죠. 그런데 들어오기 전 1년 반 동안 하나님이 훈련을 시키신 것인지 아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시련을 겪게 하시더라고요.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제 아들은 불량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속을 썩이는 스타일이었어요. 언젠가는 축구를 하다가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학생을 밀어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 적도 있죠. 그런 아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저 역시 자연스레 말의 수위 조절이 잘 되지 않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네가 아들을 욕하는 대로 만들어줄까?”라고 물으시는 거예요. 저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요. 그 과정을 통해서 ‘아~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주파수가 맞지 않았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 다음부터는 아들에게 욕을 하거나 악한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어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그렇게 욕을 하지 않으니 아들이 ‘엄마가 왜 저럴까’ 하는 생각에 일주일 동안 제 주위를 서성이더군요. 분명히 제가 욕을 할 때가 되었는데 조용하니 이상했나 봐요. 그 이후로 둘째, 셋째는 욕을 듣지 않고 살게 되었어요. 비록 첫째는 자기만 욕을 먹고 자랐다고 불평을 하지만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청소년기에 방황을 하던 그 아이가 지금은 어엿한 신학생이 되었답니다. 

    사실, 첫째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경과외를 시켰어요. 남편이 광신도라고 해도 꿋꿋하게 시켰죠.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는 아들이 제게 너무 고마왔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또 한번은 아들이 저에게 “엄마는 죽으면 뭘 남겨 줄 거야?”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야~ 인간아, 빚 없으면 다행이야!”라며 핀잔을 줬었는데, 제가 변화된 후 언젠가 아들에게 “내가 남겨줄 것은 믿음과 기도밖에 없다”고 말해주니 아들이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그 때가 하나님께 칭찬받은 것 다음으로 기뻤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을 위한 파티를 열다

    저는 아들의 청소년기를 지켜보면서 청소년 사역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주로 청소년들을 위한 콘서트나 교육행사를 기획하곤 했죠. 예를 들면, 모두들 많이 알고 있는 가수 유승준 씨와 청소년들을 위한 제대로 된 공연을 열었던 적이 있는데요. 공중에서 몇 천 개의 풍선을 떨어뜨리고 화려한 조명도 써 가면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귀한 경험을 만들어 주었었죠. 그 외에도 성교육을 통해서 청소년기 순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행사도 마련했어요. 이 행사에서는 천지창조부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통해 성교육을 하고, 왜 순결해야 하는지를 알게한 후, 순결을 의미하는 반지와 장미를 들고 부모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순결서약을 하게 했죠. 이런 일들을 통해 이제는 제가 단지 사람들을 웃기는 개그우먼이 아니라 영혼의 기쁨도 누리게 하는 개그우먼으로 쓰임받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북한으로 마음이 향하다

    얼마 전부터 기도하면서는 청소년 사역과 함께 북한 동포들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1950년에 있었던 전쟁 때문에 남북이 금 하나 그어놓고 한쪽은 배가 고파서 죽고 한쪽은 배가 터져서 죽는 모습이 지금의 현실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제게 그 모습을 보여주신 이후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그들을 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비록 남한의 부요함을 감사하게 누리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고인물과 같다고 생각해요. 물이 흘러가야 썩지 않듯이 사랑이 필요한 곳으로 우리의 부요함이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고통당하는 분들을 떠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요. 제가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북한동포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구레네 시몬 = 이성미

    저는 다윗같은 용맹함을 소유한 사람, 요셉처럼 비전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어요. 하지만 이제는 12제자의 명단에 들지 않았어도, 누가 떠밀어서 십자가를 지어줬던 구레네 시몬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까지 예수님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 고통 가운데 있던 예수님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인물보다 예수님의 핏자국과 눈물을 잠시라도 대신할 수 있는 제가 되도록 여러분도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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