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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물 한 살 청년 임형주의 꿈과 도전
팝페라테너 임형주 | 2006년 04월호

  • 대통령 취임식에서 인상적인 애국가를 불렀던 팝페라 테너 임형주와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터뷰가 잡힌 날 오전에 교통사고로 그가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오 마이 갓! 어째 이런 일이~’ 급하게 다른 분으로 취재를 대체하고 한 달을 기다려서야 인터뷰를 하게 되었으니, 기다림의 시간만큼 기대도 컸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임형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 여념이 없었던 기자는, 그가 낸 ‘임형주의 Only One’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서점에서 구해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정말 남다른 근사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이자, 그리스도인인 임형주를 만난다는 기대감은 한 것 부풀어만 갔다. 

    취재/ 김형민 · 사진/ 정화영 

     

    교회는 언제부터 다니셨어요? 

    어려서부터 동부이촌동에 있는 충신교회를 다녔어요. 모태신앙은 아니고,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선생님께서 성경동화를 읽어주셨는데, 구원을 못 받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 다는 내용이었어요. 5살짜리 어린 아이였던 저에게는 그 동화가 심각하게 들렸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7살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외국에 나가서 공부할 때도 한인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어요. 사실, 주일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죠.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제가 유학생활을 한 뉴욕이라는 곳이 워낙 영적으로 메마른 곳이거든요. 유학하면서 마음이 많이 가난해졌어요. 그래서 때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했죠. 그곳에서 한 번은 멜 깁슨의 영화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를 봤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전도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그리고 무대에 서기전에는 꼭 기도를 하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리가 되게 해달라고. 

     

    젊은 나이에 비교적 많은 성공을 거두셨는데요.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금은 타고난 것 같기도 해요. 무대에 서면 오히려 담대해지고, 편안해지는 편이거든요. 하나님께 감사해요. 저에게 이런 은사를 주셨으니까요. 마음이 편하니까 실수도 잘 하게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제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했어요. ‘형주 너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거야’라고 말이에요. 남들은 비웃었지만 저는 진짜 그렇게 될 것을 믿었어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그분과 함께 노력한다면 반드시 최고의 성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형주 씨가 쓴 자서전에 보면, 노력도 치열하게 하신 것 같아요. 

    저는 프로라고 생각해요. 프로는 프로다워야 하는데, 프로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른 점은 자기 자신을 최고의 상태로 관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죠. 노력을 하지 않고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자만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퇴보라고 생각해요. 음악이나 운동과 같은 분야는 노력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죠. 

     

    예원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국내에서 음악 수재들이 모인다는 예원학교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어요. 제 꿈이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조수미 선배님을 좋아하는데, 그분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조금 더 일찍 넒은 세상으로 가면 좋겠다’라고요. 저는 성공을 사랑해요. 욕심 때문이 아니라, 그냥 성공을 사랑하는 거죠. 그때도 아마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유학으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형주 씨 주변에는 늘 좋은 모델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네, 세상을 놀라게 했던 많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저 같은 후배들이 모델로 삼고 따라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조수미 선배님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나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클린턴 같은 분들의 전기를 좋아해요. 그분들의 삶을 볼 때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아요. 

     

    형주 씨는 후배 청소년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으세요? 

    사람은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 꿈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제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다고 꿈을 꾸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저는 그것을 믿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거든요. 만약 게임을 잘한다면 임요한 같은 사람이 되는거죠. 

    저도 더 열심히 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끔 팬들이 “형주님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하세요. 남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뿌듯한 일인 것 같아요. 한국교육개발원인가 하는 곳에서 900명이 넘는 명사 명단을 발표했는데, 제가 노무현 대통령, 유재석 씨, 안철수 씨 다음으로 4위에 뽑혔다고 해요. 지휘자 정명훈 씨를 눌렀죠(웃음). 

     

    대단하세요. 음반 내시고 공연도 꾸준히 하시느라 바쁘시겠어요. 

    그저 많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크리스천으로서 믿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는데, 바로 CCM 앨범을 내는 거예요. 찬양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도구인데, 정말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거든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도 하고 믿지않는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것인데, 세상 음악과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어야 하고, 제 정규앨범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계적 수준의 오케스트라와 같이 외국에서 녹음을 하고, 세계적인 음반회사에서 발매를 하려고 해요. 지금 현재로서는 60년 전통의 체코 교향악단과 함께 일할 예정이에요. 

     

    공연 하실 때, 찬양도 많이 하신다구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공연 때 ‘주기도문’이나 ‘어메이징 그레이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같은 찬양을 드려요. 제 찬양을 들으면서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신다고 들었어요. 이런 게 전도구나 싶어요.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도 제 찬양을 들으시고 많이 감동 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음악에 하나님께서 힐링의 능력을 주신 것 같아요. 자살을 결심하고 약을 앞에다 놓으신 분이 제 노래 ‘아베마리아’를 들으시고 자살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믿으셨다고 해요. 제 음악이 이렇게 쓰임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너무 감사하고 보람을 느껴요. 

     

    여성스러운 외모 때문에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물론 제가 높은 음역의 목소리를 가졌고, 예술가로서 여성스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제가 남자다운 강단이 있다고들 그러세요. 전 AB형이거든요.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아요. 녹음할 때 특히 그렇죠. 많은 사람들의 공동작업이라 처음부터 다시 해야할 때도 있지만 아닌 것은 밀고 나가요. 다시 하자고. 

     

    형주 씨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요. 

    부모님께서 어려서부터 엄하게 교육을 시키셨어요. 저 혼자 많은 것들을 해결하도록 가르치셨죠. 부모님은 저를 믿고 맡겨주셨고, 유학을 떠나는 준비 과정과 그곳에서의 생활도 모두 혼자 알아서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엄하기만 하지는 않으셨고 사랑도 많이 베풀어 주셨어요. 

     

    열등감은 없으세요? 

    열등감 있죠. 키가 작은 거예요. 얼마전 교통사고 났을 때, 병원에서 정형외과 선생님께 여쭈어 봤는데, 아직 성장판이 아주 조금은 열려있대요. 앞으로 계속 자라기를 바래야죠. 

     

    공부도 병행하고 계시죠? 

    미국 줄리어드에서 공부하다가 지금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성악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이탈리아가 미국보다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학교를 한 번 더 옮길 예정인데, 베니스국립음악원을 생각하고 있어요. 

     

    예원학교 재학 중에 각종 콩쿨을 석권하고, 미국으로 유학, 줄리어드음대 예비학교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합격하며, ‘천상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은 임형주. 뒤이어 2003년 노무현대통령 취임식 애국가 선창, 카네기홀 데뷔 독창회에서 팝페라를 선보여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1집 ‘셀리가든’에서 4집 ‘더 로터스’에 이르기까지 대박 앨범을 내고, 일본과 대만을 오가면서 한류열풍의 주역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이력의 그는 이제 86년생, 21살이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임형주에게서 받은 인상은, 화려한 이력과 외모에 비해, 소탈하고, 겸손하며, 속이 찬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좋은 믿음까지 가지고 있는 임형주. 그의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을 앞길이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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