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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나는 국악작곡가입니다
국악작곡가 이예진 | 2022년 01월호
  • 서울대학교 및 서울교육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강사
    제1회 국제박영희작곡상 대상 

    이예진

     

    ‘국악작곡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국악(Korean traditional music)은 우리 민족의 고유성과 전통성을 지닌 음악을 말해요. 오랫동안 전승된 국악을 계승해 온 사람들을 ‘국악인’이라고 하는데요. 전문 분야에 따라 국악연주가, 국악성악가, 국악작곡가, 국악이론가 등으로 나뉘어요. 그 중에서 ‘국악작곡가’는 전통음악의 어법을 자기 작품에 적용하거나 국악기를 사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하는 단체의 공연 성격에 맞게 전통국악을 새롭게 편곡하는 일을 하는데요. 전통 음악의 특징과 음의 기능, 악기들의 음색과 특성을 고려해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국악기를 어느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하죠. 

     

    클래식이나 실용음악 분야에 비해 국악 분야는 대중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요. 어떻게 국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희 집은 음악애호가 집안이에요. 아버지가 클래식을 너무 좋아하셔서 수집하시는 음반들도 많다보니 하루 종일 그걸 듣고 자랐죠. 할아버지도 성가대 지휘를 오래 하셨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악들을 들으면서 피아노,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들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국립국악중학교에 시험을 봐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문제는 제가 원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 분위기 상 반 강제적으로 들어간 터라 적응하는데 꽤나 고생을 했어요. 서양음악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국악을 듣는데 처음에는 그 소리들이 너무 생소하고 이상하게 들리는 거예요. 근데 또 성적은 괜찮다보니 고등학교도 자연스럽게 국립국악고등학교로 가면서 국악계에 들어서게 되었죠.

     

    국악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작곡과로 전공을 정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국악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거문고로 시험을 봐서 합격했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다닌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손에 마비가 오고 물혹이 생기면서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깜짝 놀라서 병원에 갔더니 손을 무리하게 쓴 게 원인이라 하더라고요. 거문고를 연주할 때 삐뚤어진 자세로 계속 힘을 주다 보니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온 거였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거문고를 포기하고 작곡과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죠. 어느 정도 등 떠밀리다시피 국악을 시작했고, 겨우 적응해서 잘 해보려는데 예상치 못하게 진로가 바뀌면서 사실 충격이 컸어요. 물론 대학도 국악과에 입학했지만, 좋아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대학 졸업 후 결혼과 동시에 10년 정도 작곡 관련 일은 모두 쉬었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작곡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대학 다닐 때는 곡을 쓰는 게 그렇게 싫고 마감을 지켜야 하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희한하게 교회에만 가면 설교시간에 악상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나중에는 정신 차려 보니까 교회 주보에 악보를 스케치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2005년 <천상시계>라는 국악뮤지컬에 조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극단 단원들의 열정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무언가를 저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있나?’ 하고 반성을 하면서 놓았던 작곡을 다시 시작할 결심을 했죠.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만에 다시 대학원을 가게 된 거예요.

     

    결국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오셨네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거나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작곡가로서 제가 만든 곡이 무대 위에 올라 공연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 매번 긴장이 되면서도 뿌듯해요. 그런데 제가 작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2016년 ‘​국제박영희작곡상’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에요. 아무래도 제가 공백기가 긴데다가 뒤늦게 다시 시작했던 터라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늘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큰 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나니까 그동안 가졌던 불안감과 열등감은 사라지고, 제가 잘 가고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상을 받는다는 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거잖아요. 그 수상의 경험이 제가 다시 힘을 내어 작업을 이어나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아요.

     

    작곡가로서 갖는 남다른 고충들도 있으실 거 같은데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창작을 하는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창작의 고통과 예술적인 기민함이 따르는데 유독 작곡가는 모든 감성이 극대화 된 분야인 것 같아요. 연주자들은 그래도 다른 사람과 합주도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데, 작곡가는 대부분 프리랜서로 작업하면서 모든 업무를 혼자 해내야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멘탈적으로 취약해지기 쉽죠. 예를 들면, 곡을 새로 쓰면서 공연기획도 하고, 또 학교에 출강도 나가는 업무들을 동시에 혼자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도 찾아야 해요. 저는 보통 수경재배를 하는데요. 식물들의 생산적인 활동과 강인한 생명력을 보면서 위로를 얻고는 하죠.

     

    국악작곡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으시다면 나눠주세요.

    요즘에는 전문국악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고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들이 국악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풍류대장>이란 프로그램에도 제 제자가 나오는데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전통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도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껴져서 부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 그래서 국악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강의자로서, 국악의 매력을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발굴하고 전달하는 작곡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싶어요.  

     

    취재│김용미 기자 · 사진│정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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