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구독
  • 로그인
  • 회원가입

MagazineContents

[상담] 가족과 붙어있을수록 갈등도 많아져요
노리터 | 2020년 10월호
  • 다음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코로나 블루’, ‘코로노미 쇼크’, ‘코로나케이션’, ‘언택트’, ‘포스트 코로나’, ‘상상 코로나’, ‘이시국여행’, ‘확찐자’, ‘돌밥돌밥’, ‘집콕족’. 

     정답은 코로나로 인해 생겨난 신조어들이에요.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로 인한 심리적 우울감을 말하고요. ‘이시국여행’은 이런 시기에 여행 가는 사람을 비난하는 말이죠. 특히 ‘돌밥돌밥’은 엄마들 사이에서 나온 단어인데요. 남편은 재택근무에 아이들은 집에서 영상수업을 받으니 밥을 차리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밥을 차려야 한다고 해서 생긴 단어예요. 또 ‘집콕족’은 감염이 우려되어 집에 콕 박혀서 지내는 사람을 말하고요. 이처럼 기간은 다를 수 있지만 모두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어요. 이 시간이 반가운 친구들도 있겠지만 친구를 못 만나 지루하고 자유가 없어져 불편한 친구도 있을 거예요.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부딪치는 경우도 있을 거고요. 

     

    대화에서 해답 찾기

    친구의 질문처럼 어떻게 하면 가족들과 매일 붙어있으면서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방법을 ‘대화’에서 찾고 싶어요. 핵심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대화가 아닌 배려하고 격려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에 있죠. 그런데 그게 참 어려워요.

     저도 자녀가 셋 있는데요. 함께 집에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애들이 왜 이렇게 게으르지?’, ‘저러다 뭐가 되려는 건가?’, ‘생각은 하고 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져요. “넌 왜 맨날 늦게 일어나냐?”, “왜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들고 있냐?”, “또래 친구들(고2)은 지금 죽어라 공부한다”, “그렇게 할 거면 그냥 때려 쳐라”.

     물론 이 말을 실제로 내뱉지는 않아요.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부모님께 이런 말을 실제로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요? “지금 공부 막 하려고 했어요”, “무슨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해요. 아까 공부했잖아요!”, 그럼 부모님은 “어디서 말대꾸야. 니가 잘 했어 봐라. 내가 이렇게 말하나.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 흐름이 모든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라요. 위의 대화는 판단, 평가, 비난, 비교, 강요, 책임회피의 말들이어서 관계를 연결하기보다는 깨뜨려요. 그런데 가족은 그 누구보다 가깝고 편안한 관계이기 때문에 더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대화를 나누게 될 확률이 높죠.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려면

    어떻게 하면 가족끼리 서로 존중하면서 평화로운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첫째, 가정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공동체임을 기억해야 해요. 물이 넘칠 때는 물의 중요성을 알 수 없지만 물이 없어지면 그제야 물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늘 가까이에 있어 몰랐지만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둘째, 가정 안에서 예수님 닮기를 소망해야 해요.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바디매오의 대화를 볼까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디매오는 소리를 치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앞서가던 제자들은 조용히 하라며 그를 꾸짖습니다. 아마 제자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거나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봐 짜증이 났거나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어 귀찮았을 수도 있어요. 이처럼 소통이 되지 않고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이유는 상대가 아닌 나의 상태나 생각에 집중하기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공부를 쉬고 있는 자녀 자체가 아니라, 공부를 쉬는 것은 성실하지 않다는 부모님의 생각이 서로의 대화와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이유가 되죠. 마찬가지로 친구 역시 공부하라는 부모님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유를 침해한다는 생각에 더 잔소리로 들리는 것이고요. 그럼,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첫 반응은 ‘가던 길을 멈추어 서신 것’이었어요. 자기 상황이 아닌 상대방 자체에 초점을 두신 거죠. 그리고 그의 얼굴과 눈을 보시고 ‘아, 앞이 안 보이니 보이는 걸 원하겠구나’라고 예수님의 생각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 원하느냐?”라고요. 즉, 내 생각으로 상대의 필요를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상태 자체에 초점을 맞추신 것입니다. 

     

     저도 이런 대화를 지금까지 8년 정도 연습하고 있어요. 사실 연습하면 할수록 건강한 대화를 하는 것이 어려운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럼에도 이 대화 연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사회적으로는 사람들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통로가 되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에요. 코로나로 여러 어려움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 기회에 가족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멋진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요.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 url 복사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여러분의 댓글은 힘이 됩니다^^
등록

저작권자 ⓒ 새벽나라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