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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말씀과 점점 멀어지는 세상, 어떻게 살아가야 하죠?
노리터 | 2020년 09월호
  • 세상은 완벽히 성경적이지 않아요

    친구의 이야기처럼 세상이 점점 악해지는 것 같아요. 특히, 교회에서 다음세대의 교육을 맡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세대가 지날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예전에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 질서예요”라고 가르치면 그것이 기준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건 그거고요. 시대가 변했는데 성경도 변해야죠”라며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는 것을 느끼거든요.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해졌고 절대적인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지금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구약시대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어요. 우리가 잘 알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기록해주신 계명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았어요. 하지만 세대가 거듭되면서 하나님이 아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즉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백성이 되어버렸다고 사사기 17장 6절에 기록하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무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실 때에도 세상은 성경적이지 않았죠. 예수님이 틀렸다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어떤가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세상은 완벽히 성경적이었던 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성경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방법과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힘들고 고된 일이기는 마찬가지랍니다. 그래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닮아가며,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분별하고, 진리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는 담대함과 뚝심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늘 마주해야 할 영적 싸움이에요. 

     

    선한 동기, 선하지 않은 결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세상의 가치관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친구가 말한 것처럼 진화론도 그중 하나예요.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배워야 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에 물들게 되죠. 지금 이슈로 떠오른 ‘포괄적차별금지법안’을 수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이유도 그래서예요. 차별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동기는 분명 선한 것이지만, 지향점에 따라서 선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 법안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예요. ‘총칙 2조 1. “성별”이란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GENDER)을 말한다. 총칙 2조 2. “성적지향”이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감정적, 호의적, 성적으로 깊이 끌릴 수 있고 친밀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맺지 않을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을 말한다’라는 부분이죠. 여기서 말하는 ‘성적지향’은 무엇일까요? 이 법을 발의한 분들과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은 한 개인이 생물학적 출생과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성을 골라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렇게 되면 성별은 두 개가 아닌 여러 개도 될 수 있어요. 실제로 뉴욕인권국은 31개 젠더를 인정하고, 영국의 페이스북은 51개 젠더에서 최근 71개의 젠더로 업데이트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이 법안이 통과가 된다면, 남녀를 만드시고 그 질서 속에 담아놓으신 하나님의 비밀을 선포하거나 가르칠 수 없게 돼요. 유치원 때부터 친구들은 제3의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배우게 될 거고, 세상의 기준과 방식으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겠죠.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이유예요. 그런데 이것을 알아야 해요. 사람들은 법을 정해서 차별을 금지하려 하지만 사실 어디든지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차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요. 복음이 들어갈 때, 사회적으로 감히 가까이할 수 없었던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가 한 자리에서 예배하고, 고아와 과부와 연약한 사람들이 믿음의 주역이 되는 파격적인 일이 일어났죠. 피조물인 우리와 기꺼이 하나 되시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세요. 그러나 세상은 복음이 아닌 사람의 힘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예수님처럼 살기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과 분리되어 우리끼리 살아가는 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에 어긋나는데 말이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세상이 뭐라 하든 말씀 안에서 진리를 분별하되, 비진리를 대할 때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는 태도가 필요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우리의 롤모델 예수님께 한 수 배워볼게요. 율법을 어기고 간음한 여인이 잡혀왔을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냉대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어요.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그 말에 사람들이 찔려서 다 떠나가자 홀로 남은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즉, 예수님은 진리를 거슬러 잘못된 길을 가는 여인을 품으신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죄가 없다고 하지는 않으셨죠.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예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되,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받은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게 해서 진정한 자유로 초대하는 것, 그것이 점점 비진리를 향해 흘러가는 세상을 살아낼 우리의 힘이자 무기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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