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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금식 왜 하나요?
노리터 | 2020년 07월호
  • 성경에서 금식 찾기
    금식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50여 회, 신약에서는 30여 회 등장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 ‘스스로 괴롭게 하다’ 등 금식을 상징하는 표현들도 성경 곳곳에 등장하지요. 원래 금식은 장례 때 애통함을 나타내기 위해 행하던 풍습이에요. 그것이 점차 확대되어 죄를 범했을 때, 선지자들을 통해 심판 메시지가 선포되었을 때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표현이 되었죠. 왕이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해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스스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할 때나 한나처럼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금식을 했어요.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40일간 금식을 하셨고, 안디옥의 크리스천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그들을 돕기도 했어요. 이처럼 성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순간에 금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예수님 시대에 대표적인 경건생활은 ‘구제’, ‘기도’, ‘금식’이었어요. 그 정도로 금식을 중요시 여겼죠. 그런데 예수님은 금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금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침울한 표정을 짓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기 위해 금식을 했고, 또 그것을 티내려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러한 태도를 비판하신 거예요. 금식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것이지 신앙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흔히 ‘식음을 전폐한다’는 말을 하지요?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하다는 말인데, 금식기도도 마찬가지예요. 음식을 먹지 않고 기도하는 행위를 통해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죠. 그냥 간절히 기도하면 되지 왜 굳이 음식을 안 먹으면서까지 해야 하냐고요?
     

    먹어야 할 때와 금식해야 할 때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아 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요. 외국에 단기선교를 나갔을 때의 일이에요. 한 가정에 방문해 점심 식사를 대접받게 되었는데요. 그 나라에는 바닥에 천을 깔고 그 위에서 밥을 먹는 풍습이 있어요. 그런데 식사를 하려고 덮어둔 천을 들치자 바퀴벌레들이 우르르 기어 나오는 거예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그 집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더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준비된 음식을 먹은 후 복음을 전했어요. 물론, 비위가 약해서 안 먹는다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당시에 저는 위생보다는 그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싶어서 참고 먹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예가 있어요. 제 아내는 미끌거리거나 물컹거리는 식감의 음식들을 잘 먹지 못해요. 그런데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모유 수유를 할 때는 달랐어요. 아내는 평소에는 정말 먹기 싫어하는 미역을 끼니마다 꾸역꾸역 씹어 먹고, 돼지 족발 우린 물을 시간 맞춰 꼬박꼬박 마시더라고요. 못 먹기도 하고 안 먹으려던 음식을 왜 먹었을까요? 그것은 간절함이에요. 엄마가 되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를 원하는 마음이 평소에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만든 거죠.
     반대의 경우도 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는데요. 학교에 가다 말고 구토를 심하게 해서 집으로 돌아와 계속 누워 있던 기억이 나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죠. 그럴 때는 굶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물도 끓여 먹어야 하고, 몸이 조금 회복되더라도 며칠 동안은 죽을 먹으며 지내야 하죠. 

     

     이런 이야기들을 왜 하냐고요? 굳이 끼니를 굶어가며 기도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때로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하기 싫어도 하거나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예요. 물론 금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때에 맞게 하는 것이니까요. 거기에 정죄감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다만, 친구들에게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자고 하신 전도사님의 마음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도사님은 이 방법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수련회를 준비하며 공동체 안에 연결, 연합, 일치 같은 가치를 회복하기 바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 마음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금식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스케줄에서 제외해 달라고 따로 말씀드리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그것이 기도행렬에서 빠지겠다는 뜻은 아님을 꼭 말씀드리고요. 오히려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하기를 기대하며 더 열심히 기도하기를 바랄게요.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준비하는 그 시간이 친구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될 테니까요.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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