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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타로나 사주가 정말 맞는 건가요?
노리터 | 2020년 02월호
  •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 이것들은 우리나라의 인사말이죠. 우리가 평생 동안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안’의 의미는 편안함이고, ‘녕’의 의미도 편안함이에요. 두 글자 모두 같은 의미이죠. 고로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평안한가요? 배고플 때보다 배부를 때가 평안하고, 추운 날 따뜻한 집에 있을 때가 평안할 거예요. 또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있거나 잔소리를 들을 때보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때 평안함을 느끼죠. 이처럼 사람들은 음식, 건강, 위로, 배려 같은 기본적이 욕구들이 채워질 때 평안해집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되면 사람들은 ‘불안’하다고 이야기를 하죠.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욕구 중에 ‘예측가능성’이라는 욕구가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은 친구가 있어요. 예매를 위해 PC방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어떤 마음일까요? 기대도 되지만 불안하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잘 아는 분이 콘서트 담당자여서 본인에게 배당받은 표를 주겠다고 했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마음이 평안할 거예요. 첫 번째나 두 번째 경우 모두 다 표를 손에 들고 있는 상태는 아니에요. 그런데 왜 뒤의 경우는 평안할까요? 미래가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점을 보는 이유도 이런 거예요. 무언가 예측 가능한 것을 알아야 마음이 평안한 것이죠. 시험 성적이 어떨지, 원하는 학교에 합격을 할지, A 대학을 가야 할지 B 대학을 가야 할지, 이성을 만날 때 A를 만날지 B를 만나야 할지 말이에요.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라도 얻고자 노력을 해요. 그 노력 중 하나가 ‘점’을 치는 것이고요. 

    그럼,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타로와 사주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정리해볼게요. ‘타로’는 서양의 게임용 카드였는데 어느 시점부터 사람의 앞길을 예언하는 점술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또 ‘사주’라는 것은 네 개의 기둥을 의미해요. 이 기둥은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 날짜와 시간을 말하고요. 그것들을 조합하면 그 사람에게 정해진 팔자, 즉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떤지 알 수 있다는 이론이에요. (팔자대로 살라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왜 사주를 보는지는 늘 이해가 안 가지만요.) 저는 두 개 모두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말하지 못할 것 같고요. 대신 다른 사람의 일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성경의 내용을 통해 살펴보려고 해요. 

     

    과거와 현재까지만
    예수님께서 거라사라는 지역에 가셨을 때 귀신 들린 한 사람이 뛰어 나오죠. 그리고 예수님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막 5:7) 귀신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본 거예요. 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갔을 때,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일행을 따라다니며 소리 쳤어요.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 16:17)
    여러분, 대단하지 않나요?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데 귀신 들린 사람들은 예수님과 예수 믿는 사람을 알아본 거예요. 그래요. 사탄에게도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정말 귀신이 역사하면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어요. 그런데 미래를 아는 것은 불가능해요. 인간의 일생을 볼 때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은 해볼 수 있지만 정확히 맞출 수는 없어요. 타로나 사주 역시 마찬가지죠. 통계적으로 미래에 접근할 뿐 그것은 절대적인 답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점을 쳐서 자신의 미래를 보려 하는 것은 마음에 평안이 깨어졌기 때문이에요. 본질적으로는 그 안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죠.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사람들은 그 불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게 되어 있어요. 점을 치는 행위도 그중 하나이고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해답이 없을뿐더러 하나님은 이처럼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단호하고 철저하게 금지하셨어요(신 18:14).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해요. 진정한 평안은 세상의 도움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통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요.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묵상할 말씀을 하나 소개하고 마칠게요. 이 말씀이 친구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기를 기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글 노희태 목사(sen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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