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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용서와 화해
다윗의 용서와 화해

김 종 윤 순복음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삼상 24:19~22.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다윗만큼 인간관계가 복잡했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모든 인생사가 그렇듯이 이러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다윗은 여러 사람들과 갈등을 빚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모습을 배워갔다.
성경에서 이미 밝히고 있듯이 다윗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아니다. 따라서 사무엘서의 주요 내용은 하나님께서 왜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하셨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왕으로서 사울과 다윗의 삶의 차이 중 하나는 사울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 기간이 없었다는 점이고,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에도 결코 편하지 않았던 10년 이상의 삶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서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를 교훈 받았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고 그와 화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왕은 인간관계 속에서 용서와 화해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함을 강조한다.

용서와 화해의 판단자는 하나님
다윗을 선택할 당시 사무엘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왕은 인간의 판단 기준인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 기준인 마음에 근거해야 함을 강조한다삼상 16:7. 이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왕은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행동과 반응에 있어서 인간적인 판단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하고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함을 강조한다.
지도자에게 인간관계 속에서 잘잘못을 판단하는 근거를 하나님께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진리는 이미 창세기의 요셉에게서도 나타났다. 성경에서 밝히는 야곱의 대표적인 유언은 자신을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있는 묘실에 장사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50장에서 다른 형제들에 의해서 요셉에게 주어진 야곱의 또 다른 유언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유언의 이면에는 야곱의 죽음으로 요셉의 형들이 신상에 큰 위협을 느껴 불안감을 가지게 했다는 사실이 있다. 결국 요셉의 형들은 보복을 하지 말라는 야곱에 유언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이전에 요셉에게 행했던 악을 생각해서 형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앞으로는 요셉의 종으로 살 것을 제언한다창 50:15~18. 이런 속에서 요셉과 그의 형들 사이에 극적인 화해의 모습이 나타난다. 자신의 종이 되겠다는 형들의 제언에 대해 요셉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그들과 화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요셉과 그의 형들이 화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요셉이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판단을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하려고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뜻과 의도에 맞추어 선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 사울과의 관계
다윗 역시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화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화해는 사울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사실 사울과의 관계가 결코 좋지 않 은것은 다윗이 사울 집안에 이어 이스라엘의 왕권을 이어가는 데 결코 작지 않은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묘사할 때 하나님이 선택하신 화해자로서 다윗의 이상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아니라 사울과 그의 아들인 이스보셋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내러티브는 왕위가 사울에서 다윗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결코 평화적이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다음의 두 가지를 조심스럽게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야훼께서는 항상 다윗과 함께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윗은 사울의 집안에 대해 항상 올바르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다윗과 사울 사이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사실 다윗의 화해는 더욱 위대하다. 사무엘상 18장에서 20장은 성경 독자들로 하여금 사울과 다윗의 결별의 원인이 다윗이 아니라 사울에게 있었다는 것을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무엘상 18~20장은 계속해서 사울과 다윗과의 갈등의 원인이 예상 외로 성장한 군대장군에 대한 질투로 인한 사울의 증오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장수 골리앗 앞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 당당했고, 미갈과 결혼하기 위해 블레셋인의 양피 200개를 가져올 정도로 무모한? 용기까지 소유했던 다윗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사무엘상 18~20장에 나오는 다윗은 사울 앞에서만은 그저 피하고 도망가는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증오는 이미 사무엘상 18장 8절에서 나타나고, 말18:8, 21이나 행동19:9~11, 14, 20을 통해 수차례 반복되어 나타난다. 성서 저자는 사울의 증오 때문에 다윗이 진정한 충성심을 발휘할 수 없었고 그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할 수밖에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다삼상 19:9~17(11). 더 나아가 사울과는 달리, 사울의 자녀인 요나단과 미갈이 다윗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의 도피를 돕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은 사울과 다윗과의 갈등이 사울에 의한 것임을 더욱 강조한다삼상 19:11~17; 20:1~21:1.
이런 억울한 취급을 받고 있는 다윗이 사울과의 화해를 이룬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함을 알았고, 그것을 사울과의 관계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있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은 사울에게서 억울한 증오를 겪고 있는 바로 그때 다윗에게 그것을 보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지만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사울과의 관계에 있어서 비록 나중에 사울에 의해 다시 나빠지긴 했지만 극적인 화해를 이루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비록 그 자세한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은 공통적으로 다윗이 억울하게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인간적인 판단에 근거해 보복하지 않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음으로써 사울의 회개를 가져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학자들은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을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으로 본다. 이스라엘 왕이 될 사람으로서 다윗이 과연 중요한 순간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지를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장면으로 이해한다「사무엘상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pp. 406~407. 특히 각각의 상황 속에서 외적이고 인간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고의 기회라고 평가하는 신하들의 말은 인간의 판단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김으로써 하나님께 합격하는 다윗의 모습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삼상 24:4; 26:8.
흥미롭게도 사울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다윗이 절대부정never을 뜻하는 히브리어 ‘lo’를 사용하지 않고 상대부정인Don’t인 히브리어 ‘al’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사울을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를 지금은 죽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버림받은 왕을 다루는 데 그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다윗의 내적인 믿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어 나오는 26장 10절의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는 다윗의 언급은 다윗의 내적인 믿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자신이 사울을 죽이지 않았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울의 증오심에 대한 다윗의 억울함을 밝히고 있다삼상 24:14; 26:19~20. 다윗의 억울함에 대한 이와 같은 강조는 억울함 속에서도 판단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사울의 회개까지 유도하는 다윗의 화해의 기술?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성경은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과 잠시나마 화해할 수 있었던 원인이 인간관계의 잘잘못에 대한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데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삼상 24:11~15.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삼상 26:23~24.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증오심이 강했던 사울이 두 번 모두 다윗의 말을 듣고 다윗을 적대시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의 말속에서 사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임을 밝힘으로써 다윗 왕권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있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삼상 24:18~21.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삼상 26:21.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삼상 26:25.

다윗과 사울의 화해는 비록 그 효과가 사울의 또 다른 증오로 인해 얼마 가진 못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다윗의 믿음으로 인해 이루어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런 다윗의 믿음은 사울의 회개까지 가져오게 했다. 결국 다윗은 두 번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울과의 화해와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왕이 될 자로서의 시험을 통과하고 있다.

2. 나발과의 관계
아비가일 이야기삼상 25장는 다윗이 사울을 살려 준 두 개의 에피소드 사이에 위치하면서 다윗에게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잘잘못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나발의 배은망덕으로 인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고자 했던 다윗은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로 인해 인간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로서의 다윗의 위치를 올바로 파악하고 있던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나발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이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행동이 아님을 지적한다. 이후 다윗은 그가 외모적으로 판단해서 개인적인 보복을 하지 않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과 아비가일에게 감사하고 있다삼상 25: 32~33. 나발의 에피소드로 인해 다윗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3. 압살롬의 반란 후 쫓겨나는 과정에서
다윗은 그의 생애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판단을 하나님께 다시 한 번 맡긴다. 압살롬의 반란에 의해 예루살렘 성에서 쫓겨나는 과정에서 사독과 그의 제사장들이 법궤를 가지고 나오려 하자 다윗은 법궤를 다시 돌려놓을 것을 명령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 15:25~26.

여기서 그는 자신이 회복되는 것이 법궤를 가져오는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 후 그를 저주하면서 돌을 던지는 시므이를 죽이려는 아비새에게도 다윗은 그것을 만류하면서 말했다.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삼하 16:11~12.

이런 고백은 자신을 회복시키실 분도 하나님이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주실 분도 하나님이라는 다윗에 내면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어려움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범죄에서 기인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다윗은 모든 일에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회복이나 억울함 역시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를 통해 성경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과 판단을 중요시하는 내적인 믿음을 가지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물론 화해에 있어서 다윗이 항상 성공한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압살롬과의 관계에서 다윗은 사울과의 관계에서 나타냈던 모습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 암논을 죽인 후 압살롬은 그술 땅으로 도피했으나, 군대장관 요압의 요청으로 말미암아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게 된다삼하 14:21~24. 그러나 다윗은 2년 동안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음으로써 압살롬의 불만을 가져오게 된다. 결국 요압의 중재로 압살롬은 다윗에게 나아와 형식적인? 화해를 하게 된다삼하 14:31~33.
그러나 이 화해는 다윗이 사무엘상 24장과 26장에서 사울과 행했던 화해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특히 화해의 근거에 있어서 압살롬과의 화해는 하나님이 압살롬의 행위를 판단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화해는 온전한 화해가 아니었고 이는 압살롬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다윗은 일생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개인적인 보복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올바른 태도가 아니며 나의 억울함과 진실을 아시는 하나님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모든 판단을 맡겨야 함을 배우게 된다. 특히 사울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윗의 용서는 사울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고 사울의 입으로 다윗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임을 고백하게 만든다. 사울과의 화해로 대표되는 다윗의 화해를 살펴볼 때 무엇이 사람을 바꾸는 능력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사울을 회개시킨 것은 다윗의 용맹이나 군사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에서 나오는 용서였다.
글을 정리하면서 십자가상에서 한 강도를 회개시킨 예수님을 생각한다. 과연 예수님의 무슨 능력이 강도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케 했을까? 그것은 천군천사를 부리는 능력도 아니었다. 강도가 회개하기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은 주님께서 자신을 죽이는 자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도를 변화시킨 십자가의 능력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과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그리고 다윗이 사울과의 관계 속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인간관계의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다. 이제 이런 십자가의 능력을 한국 기독교가 발휘해서 진정한 화해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김 종 윤 | 200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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