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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교회, 성경적 신학을 구축하라
전문가의 책 읽기 > 이승구의 ?「전환기의 개혁신학-20세기 후반 영미 개혁신학의 동향?
21세기 한국 교회,
성경적 신학을 구축하라

김 병 훈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21세기 한국 교회의 돌파구가 될 책
지난 2007년 한국 교회는 100년 전인 1907년에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회개 운동과 그 후에 전국 각처로 이어지며 일어났던 부흥운동을 기억하면서 “Again 1907”을 기원했다. 각 기관과 모임들이 1907년의 부흥의 열기와 같은 은혜를 바라며 각종 학술 세미나와 집회, 기도회 등을 소그룹 단위에서 대형 경기장 규모의 집회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로 개최했다. 그러나 2008년 지금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 한국 교회는 이전과 비교해 별 다른 회개와 부흥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감소 추세에 있는 교인들의 수가 성장 추세로 전환된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탈레반의 만행에 의하여 순교를 당한 일을 빌미로 반기독교적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적 분위기는 전도의 기세를 크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본래부터 종교 다원 사회였던 한국 사회가 후기 현대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려는 듯 기독교 복음을 향해 독선적이며 배타적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독교 안에서 나누고 있는 각종의 전도 프로그램과 교회성장 방법론만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없는 근본적인 대적 환경이 교회를 둘러싸고 강하게 조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기독교 내부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계시성과 영감성,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부활 등을 조롱하면서 보수적인 신학과 신앙을 비판하는 시도를 대중을 향하여 과감히 드러내고 있다. 결코 새로운 도전은 아니지만, 학자들의 틀을 넘어 대중을 미혹하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의깊게 대응해야 할 현상이다.
그렇다면 20세기에 놀라운 숫적 부흥의 은혜를 받은 한국교회는 이제 21세기에 어떤 방향으로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할까?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이승구 교수가 최근에 저술한 「전환기의 개혁신학 - 20세기 후반 영미 개혁신학의 동향」은 이 같은 질문에 정확하고도 적절한 하나의 답을 시사한다. 그것은 한국 교회는 신학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승구 교수가 말하는 개혁신학은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신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칼빈의 개혁신학과 역사적 맥락이 닿아 있다고 하더라도 신정통주의 신학처럼 현대적 변형이 오히려 신학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있는 신학들을 포괄하는 신학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승구 교수가 의식하는 신학은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에 근본적으로 충실한 신학을 뜻한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개혁신학은 한국 교회의 경우 특별히 장로교 신학이기는 하다. 하지만 개혁신학이 그 원리를 “오직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맥락에서 개신교회를 태동케 한 종교개혁의 신학 전통을 충실히 잇고 있다. 아울러 교회론 이외의 다른 부분들에서는 침례교회와 상당한 수준에서 신학적 일치성을 나누는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교파들과도 성경론, 신론, 기독론, 인간론 등에서 종교개혁에 의한 개신교회로서의 일치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승구 교수의 이번 저술은 한국 교회 전체가 참조할 만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성경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 개신교회의 정체성
개신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는 교리에서 찾아야 한다. 교파가 그 무엇이든지 개신교회는 천주교회나 희랍정교회와는 달리 교회의 본질이 외형적이며 유형적인 조직체에 있다고 보지를 않으며,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성도의 무리로 이해를 한다는 점에서 일치를 한다. 결국 개신교회의 교회됨은 그들이 모여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이해가 무엇이며 어떠한가에 따라서 교회의 진정성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교회를 둘러싼 일반 사회의 목회적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한국 개신교회들 가운데 일부 교회는 천주교회와 같은 예전을 도입해 교회의 외형적 형식성을 높이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 교회는 감정과 신비에 호소하는 열광적인 신령주의에 의지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개신교회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교훈에 따른 신학과 교리에 충실한 신앙고백을 하도록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침으로써만 교회됨의 본질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이승구 교수의 「전환기의 개혁신학」은 1960년대 이후 현대의 개혁신학에 기여한 영미권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들이 개혁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정체성을 분명하게 전수하기를 원했던 주요 신학자들의 사상을 그들의 저서들을 통해 소개한다. 또한 그것들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데, 그 범위는 상당히 방대하다. 이승구 교수가 다룬 학자들과 그들과 관련한 학교들을 들어보면 게할더스 보스(칼빈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안토니 후크마(칼빈 신학교), 코넬리우스 반틸, 에드먼드 클라우니, 싱클레어 퍼거슨(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로버트 레이몬드(커버넌트 신학교, 낙스 신학교), 도날드 맥클라우드(스코틀랜드 자유장로교 신학교), 로버트 리담(런던 바이블 칼리지, 개혁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그레엄 골즈워디(호주 무어 칼리지), 고든 스파이크맨(칼빈 대학), 리차드 린츠(고든 콘웰 신학교) 등을 망라한다.
이들의 저서들을 각각 읽고 이해해 이들의 신학적 특성을 분별해내고, 16~17세기 역사적 개혁신학과 비교·검토하는 일은 매우 오랜 시간의 학습이 요구되는 일이다. 일선 목회자들로서는 감당키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승구 교수의 노력으로 이와 같은 상당한 규모의 학문적 성과를 손쉽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전환기의 개혁신학」은 이승구 교수의 학문적 지경과 깊이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과연 한국 신학을 이끌어 가는 현 세대 최고 수준의 학자 가운데 한 분임을 인정케 한다.

책의 구조와 내용
책의 구조와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승구 교수는 「전환기의 개혁신학」 이전에 세 권의 개혁신학을 소개하는 책들을 서술했다. 「개혁신학에의 한 탐구」와 「개혁신학 탐구」, 그리고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이 그것이다. 이승구 교수는 앞의 두 권은 역사적으로 개혁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고, 마지막 책은 21세기 개혁신학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전환기의 개혁신학」은 이 사이에 있는 것으로 책의 부제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20세기 후반 영미 개혁신학의 동향”에 관한 것이다.
이승구 교수는 1960년대 이후 20세기 말 개혁신학의 동향을 크게 네 부류로 구별한다. 하나는 “기존의 개혁신학적 틀 안에서의 발전”으로 안토니 후크마, 로버트 레이몬드, 로버트 리담, 도날드 맥클라우드, 싱클레어 퍼거슨 등을 포함시킨다. 또 하나는 “철저한 개혁신학의 추구”로 코넬리우스 반틸과 그 후계자들, 에드먼드 클라우니, 그레엄 골즈워디 등을 포함시키며, 세 번째는 “개혁신학을 하는 새로운 범례의 제시”로 고든 스파이크맨, 라치드 린츠, 데이비드 웰즈, 케빈 반후저 등을 포함시킨다. 끝으로 “‘개혁파 인식론’의 발전”으로 알빈 플란팅가, 니콜라스 월터스토르프 등 개혁파 철학자들을 포함시킨다. 이런 분류들 가운데 「전환기의 개혁신학」은 ‘개혁파 인식론’과 관련한 종교철학자 플란팅가와 월터스트로프, 그리고 세 번째 부류에 속한 데이비드 웰즈와 케빈 반후저에 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다루지 않는다.

저자의 신학관
이승구 교수는 이런 분류에 따라 학자들을 분류하되 각각의 분류에 대한 서론적 설명은 생략한 채 각각의 학자들의 신학적 특징을 차례차례 소개하고 나름대로 평가를 제시한다. 본 서평문에서는 무려 688쪽에 달하는 방대한 진술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만으로도 지면이 제한을 받는 관계로 개혁신학자들에 대한 이승구 교수의 소개를 다시 요약하여 제시하는 것은 단념키로 한다. 그보다는 이승구 교수가 이분들을 평가한 것 가운데 몇 가지를 언급함으로써 저자의 신학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승구 교수가 소개하는 개혁신학자들의 신학과 이승구 교수의 신학은 실체적으로 연속성과 일치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통해서 그의 신학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소개하는 분들의 신학에 대해서도 약간의 언급이 가능할 것이다.
이승구 교수의 신학은 철저하게 16세기 칼빈의 신학과 17세기 개혁주의 정통 스콜라 신학의 정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그가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 신학의 모토와는 달리 어느 일개 신학에 충실하다는 뜻이 아니다. 17세기 개혁신학은 논증의 방식과 신학적 체계의 구성에 있어서 스콜라적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신학의 사상을 개진함에 있어서는 구속사적이며 언약적인 성경의 해석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의 스콜라 신학과는 사뭇 구별이 되기 때문이다.

신학 제일의 원리는 성경
따라서 이승구 교수의 신학 원리는 두 가지 점으로 요약이 된다. 첫째는 신학의 제일 원리는 성경이라는 점이다. 그는 「전환기의 개혁신학」 전반에 걸쳐서 성경의 해석이 신학적 해설의 수정을 요구한다고 판단할 경우 그 신학이 비록 역사적 개혁신학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비평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충실한 역사적 개혁신학의 전수자이며 전달자의 소임을 다하는 까닭이 역사적 개혁신학에 대한 그의 단순한 신학적 충성도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개혁신학이 성경의 교훈과 일치한다는 그의 확신 때문임을 말해 준다.
예를 들어 이승구 교수는 안토니 후크마의 신학을 평가하기를 성경적 주해에 근거하면서 또한 전통적 개혁신학에 충실하다는 점을 높이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신 말씀이 아담이 불순종한 날에 왜 즉각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는가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 후크마는 심판의 연기가 하나님의 일반 은총 때문이라고 보는 바빙크, 카이퍼, 알데스 등의 견해를 따르기보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히브리어 관용적 표현으로 사실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를 뜻한다는 게할더스 보스의 주해를 우선적으로 취한다. 또한 에베소서 4장 22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과 관련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 새사람을 입으라”고 부정사를 명령형으로 이해하면서 신자 안에 옛사람과 새사람이 현존하고 있어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고 해석하는 개혁주의 일반의 이해를 따르기보다, 존 머레이를 의지하면서 부정사를 명령형이 아니라 결과 또는 설명의 부정사로 이해하여, 이미 옛사람을 벗었으며 새롭게 되어 새사람을 입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주해상 더 타당성이 있다고 후크마는 진술한다. 이승구 교수는 후크마의 이런 사례들을 몇 가지 지적하면서 성경 주해에 근거하여 계속 개혁되어 가는 개혁신학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로버트 리담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평가도 동일한 맥락을 따른다. 이승구 교수는 리담의 중요한 공헌도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로 리담이 몰트만과 융엘의 소위 ‘십자가 신학’을 평가하면서 제기한 “그들이 얼마나 많이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성경의 증언 전체에 공정했는가?” 라는 질문을 짚어낸다. 이승구 교수는 리담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경의 언약과 연결을 시키는 접근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리담이 이해하는 언약 신학과 관련한 나름대로의 의문점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이 교수 자신이 나름대로의 개혁파 언약신학에 일정한 이해를 확고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승구 교수의 이런 평가는 자신이 게할더스 보스(1862~1949)의 계시사적 맥락의 성경 신학과 동시에 존 머레이(1898~1975)의 주해 중심적 조직신학을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며,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성경에 근거한 신학을 분별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리차드 린츠에 대한 평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실 보스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승구 교수가 1960년 이후에 활동한 개혁신학의 동향을 설명하는 가운데 보스에게 한 자리를 할당한 것은, 이때 활동한 개혁신학의 상당 범위가 대체로 보스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교수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개혁신학의 성경해석의 기초가 보스의 구속사적 이해와 맥락을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레엄 골즈워디를 취급한 것도 동일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구 교수는 리차드 린츠를 결코 생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린츠는 보스의 성경신학의 이해를, 보스의 충실한 제자 개핀의 뒤를 이어, 본격적인 의미에서 조직신학에 적용하고자 한 서론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린츠는 단지 구속사적 성경의 이해에 따라 조직신학의 내용을 수정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콜라적인 조직신학의 방법론 자체를 구속사적 해석에 따라 재구성해 신학의 틀을 아예 바꾸기를 시도한다. 이승구 교수는 린츠의 서론적 연구가 각론의 내용을 새롭게 채워가는 완성의 때를 보기를 강력히 소망함으로써 자신의 신학적 과제를 간접적으로 피력한다.

전통신학에 비춘 신중함
이상에서 살핀 것에 덧붙일 이승구 교수의 또 다른 신학 원리는 그의 신학이 어지간해서는 17세기 개혁주의 스콜라 정통신학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이 된다. 그것은 그가 역사적 개혁신학에 교조적인 충성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생각에 17세기 개혁신학은 그 이전의 초대 교부와 중세 스콜라 신학 가운데 성경적 교훈과 일치되는 중요 신학 사상을 가장 분명하게 전수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7세기 개혁신학에서 벗어나는 어떤 신학적 결과물에 대해서도 그는 매우 신중하다. 로버트 레이몬드의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레이몬드가 하나님의 작정과 관련해 ‘절대적 필연성’을 선호할 때, ‘결과적 절대적 필연성’과 ‘상대적, 가정적 필연성’의 개념을 제시하며 비평을 놓치지 않는 것은 그가 스콜라 정통신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승구 교수는 현대 개혁파 신학자들이 새로운 신학적 추론을 제기할 경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비롯한 16~17세기의 개혁파 신앙고백과 개혁파 스콜라 정통신학에 비추어, 언제나 매우 신중히 살피어 불필요한 추론을 삼갈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승구 교수의 신중함은 본서에서 언급되는 탁월한 개혁파 신학자들이 현대 신학자들을 부분적으로 인용할 경우조차도 그것으로 인하여 현대 신학자들의 사상이 더불어 인정받는 듯한 오해를 주지 말 것에 대한 강조로 반복한다.

성경과 신학에 충실하라
지면의 제한으로 좀 더 자세한 언급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하긴 지면이 더 허락이 된다고 해도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신학 원리를 예증하는 것에서 그치긴 하겠지만, 그것을 통해 이승구 교수의 신학적 지경과 깊이를 살펴볼 기회를 더 나눌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승구 교수가 밝히고 있듯이 「전환기의 개혁신학」은 16~17세기의 교회를 위한 신학이 현대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실체적인 동일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의 연속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21세기에 접어든 한국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전환기의 개혁신학」을 통해 이승구 교수는 ‘성경’과 ‘신학’에 충실하라는 권면을 688쪽에 달하는 지면마다, 행간마다 새기어 놓고 있는 듯싶다. 오늘의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들에게 일독을 진지하게 권면한다. 본서는 결코 단지 신학을 토론한 것에만 그 의의가 있는 책이 아니라, 성경적 설교와 교회의 본질의 회복을 요구하며 돕는 책이기 때문이다.

김 병 훈 고려대학교(B.A.)와 장로회신학대학교대학원(M.A.), 합동신학대학원(M.Div.), 칼빈신학교(Th.M. 수료, Ph.D.)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다.
깁병훈 | 200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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