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듣는 법 김형익 지음

설교 듣는 법 표지

 

  • 출간일2020.09.16
  • 브랜드두란노
  • 책분야믿음과성장
  • 페이지216p / 137*210(mm)
  • ISBN9788953138216
  • 원서명
  • 출간예정
분별과 은혜

명쾌한 복음 설교자 김형익 목사의 ‘듣기’에 대한 제언
하나님의 백성으로 책임 있게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분별하여 듣고 있는가?

설교가 넘쳐나는 시대, 잘 전하는 것만큼 잘 듣는 것이 관건이다
비대면 사회로 접어들면서 성도들은 현장 예배와 현장 설교의 아쉬움을 다양한 방법들로 채워 나가고 있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이외의 타교회의 온라인 예배를 드리거나 설교를 많이 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설교를 들을 수 있다.

저자 김형익 목사는 바로 이 점에서 바른 설교만큼이나 바른 설교 듣기 주제에 주목한다. 저자는 벧샬롬교회 주일 강단에서 8회에 걸쳐 “설교 듣기와 성경”을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설교 듣기”와 “신앙과 성숙”의 문제를 연결시킨다.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려면 설교자가 바른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회중이 그 설교를 바르게 듣는 일이 필요하다”라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본서의 취지를 밝힌다. 거짓 목사, 거짓 교사들이 시대마다 있다 하더라도, 거짓 선지자들에게만 하나님이 책임을 물으시지 않는다며 저자는 “설교 듣는 자”들에게 영적 점검을 요청한다.

분별하는 자에게 은혜는 떠내려가지 않는다!
바른 설교 듣기는 철저하게 바른 설교를 전제하고 있되, 본서는 어떻게 설교를 듣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특히 설교자와 청자 모두의 관점에서 공감하는 비슷한 경험과 문제들을 과감히 지적하고 성경의 권면들을 풀어낸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할 대상으로 설교자와 청자 모두를 포함하면서, 설교 전하는 자의 영광과 책임만큼 설교 듣는 자의 영광과 책임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여 청자들에게 거룩한 책무를 알려준다.

이 책의 부제 ‘분별과 은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설교를 잘 듣는 것은 설교를 분별해 들으면서 그 말씀을 통해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분별하다 보면 은혜를 잃어버리게 되고, 은혜를 받으려면 무분별하게 아멘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적하면서,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서로 충돌되지 않는지, 이 두 가지를 함께 붙잡고 설교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조목조목 제시한다. 설교 듣기의 중요성, 설교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 듣기와 공동체, 마음에 새기기, 설교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등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히 설교 때문에 시험에 든 성도나, 설교를 소홀히 여기는 이에게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성경의 원리들을 쉽고 명확한 언어로 만날 수 있다. 복음 안에서 말씀으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 “교회 공동체” 중심의 메시지이기에 장마다 제공되는 나눔을 위한 질문을 보면서, “설교 듣는 자로서의 영광과 책임”을 스스로 점검하게 된다.


지은이 _김형익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단중에님신학교 교수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1991-1995년). GP(Global Partners) 선교회 한국 대표로 선교 동기부여와 선교사 훈련과 파송 등에 참여했고(1996-2003년), 이후 워싱턴 DC 근교에 죠이선교교회를 개척해 9년간 섬겼다(2006-2015년). 2015년 귀국하여 광주 벧샬롬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복음적 강해 설교와 쉽고 명쾌한 기독교 교리 강의로 주목받는 저자는 복음의 진리만이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세우는 힘이라는 믿음과, 복음으로 충분하다는 목회 원칙 아래 말씀이 이끄는 교회가 되기 위해 사역하고 있다. 가족으로 아내 한희정과의 사이에 아들 인성, 딸 혜성을 두었고 저서로는 《율법과 복음》(두란노), 《은혜와 돈》(복있는사람),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이상 생명의말씀사) 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
1장 설교 듣기가 왜 중요한가
2장 설교 듣는 자로의 부르심
3장 말씀 듣기와 공동체
4장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기
5장 설교자를 넘어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라
6장 자기 부인과 가난한 마음
7장 설교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8장 설교와 설교자
주(註)


본문 맛보기
*설교는 두 가지를 드러내야 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고, 둘째는 인간의 자기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자신의 영광을 높이시는 하나님의 열심이고, 인간의 자기 의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변치 않는 인간의 교만한 열심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의를 드높이는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 인간의 자기 의라는 교만을 부서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다 스스로 괜찮은 줄 알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설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형편없고, 무가치하고, 합당하지 않은 존재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과 우리의 약함, 하나님의 강하심과 우리의 무능함,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리의 악함, 이 둘 사이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이 두 가지를 바르게 다루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3-24p

설교는 먼저, 분별을 필요로 합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말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멘” 할 수는 없습니다! 설교를 비판적으로 듣는 것과 분별하며 듣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은혜를 구하는가?’가 그 차이를 가져옵니다. 28p

설교 듣기에 요구되는 또 하나의 태도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이 말씀은 설교를 들을 때 듣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사람은 그 말씀 속에서 주의 영광을 보게 되고(이 일이 설교를 듣는 이들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 영광을 볼 때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영광에 이르게 되며, 그 역사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31p

여기에 결실할 수 있는 조건 몇 가지가 제시됩니다. 먼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는 말씀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도덕적 특성과 신실함을 보여 줍니다. 둘째,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형편이 닥치든 마귀가 취해 가지 않도록 들은 말씀을 꼭 붙잡고 있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셋째,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바위 위에 떨어진 씨, 즉 말씀을 받을 때 기뻐하나 시련이 오면 배반하는 자의 태도와 정반대입니다. ‘배반’은 문자 그대로 떨어져 나가는 것인 데 반해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요인을 극복하는 태도와 실천입니다. 내가 말씀을 붙잡는 것이 ‘지키는 것’이라면, 인내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른 설교를 잘 듣는 것은 신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서 바른 설교가 전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참된 교회의 첫 번째 조건으로 ‘말씀의 바른 선포’를 꼽았습니다.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지 않으면 아무리 교회 간판이 붙어 있어도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를 잘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 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맞닥뜨렸던 교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단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통 교단에 속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전하는 교회들이 종종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67p

신앙생활에 성경 읽기나 기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설교를 들을 때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각성하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복음이 있는 것, 중요합니다. 그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것, 중요합니다. 복음을 듣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들은 말씀이 나의 믿음과 섞여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87p

히브리서 기자는 또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라고 말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명령을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우리는’이라는 말로써 자신이 편지를 쓰고 있는 대상과 스스로를 동일시했습니다. 들은 말씀에 유념하는 것은 미숙한 신자들만 주의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숙한 신자든, 미숙한 신자든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합니다.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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