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자리로 C.S.루이스(C. S. Lewis) 지음

기도의 자리로 표지

 

  • 출간일2020.10.21
  • 브랜드두란노
  • 책분야
  • 페이지176p / 125*190(mm)
  • ISBN9788953138742
  • 원서명How to Pray
  • 출간예정
영광의 그분과 거룩한 발맞춤

소란한 시대,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을 향한
C. S. 루이스의 따뜻한 초대!

“평생 기도를 실천한 사람” C. S. 루이스
그가 온 삶으로 내디딘 기도의 행진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같은 기독교 고전의 작가이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오랜 시간 영문학을 가르쳤던 존경받는 스승,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칭송받는 C. S. 루이스. 이 시대를 사는 무수한 신앙인들이 그의 치밀한 영적 탐구와 빛나는 지혜에 빚을 졌다. 그의 수고 덕에 우리는 차마 해석하지 못하고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우리 마음과 신앙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심오하고 생동감 넘치는 기독교 변증과 해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도록 지금껏 수많은 신자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루이스가 보여 준 이런 탁월함은 ‘일상에서 꾸준히 기도를 실천하며, 신자로서의 기본을 적극적으로 지킨 삶’이라는 탄탄한 밑바탕에서 나왔다. 그의 폭넓은 저작에서 ‘기도’를 다룬 최고의 글들을 엄선한 책, 《기도의 자리로》에서 이 귀한 영적 습관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받는 작가 C. S. 루이스의 전작에서 엄선했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기도의 위력’에 관한 섬세한 통찰

모든 것이 완전할 때가 아니라
오늘의 이 모습으로 기도하는 법


루이스의 작품에는 고전으로 인정받는 작품 외에도 에세이와 기사, 편지도 많은데, 그중에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다.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여러 명저들을 포함해 아직 소개되지 않은 글 가운데 ‘기도’를 주제로 한 글을 선별해 엮었다. 장별로 기도에 관한 질문들을 제목으로 구성했으며, 루이스의 다양한 글들에서 그에 해당하는 대답을 찾아 실었다. 각각의 본문에는 기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확장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기도해야 하는 이유와 기도의 목적은 물론, 구체적인 방법과 빠지기 쉬운 함정, 분별해야 할 사항, 세속 시대 속에서 ‘기도’라는 신앙 행위를 둘러싼 모든 이슈를 면밀하게 다뤘다. 시대적 고통과 개인적 분투 속에서도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루이스의 숨김없는 신앙 고백이, 안팎으로 온갖 소요에 시달리는 이 시대 신자들을 기도의 자리로 초대한다. 이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 그리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자.


지은이 _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
20세기 지성의 거장이자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그는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무신론에 심취했으나 온전한 회심을 경험하고 나서는 탁월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작가로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오랜 시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를 지냈으며, 1954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 학과장으로 일했다.
30여 권의 폭넓은 저서를 통해 다양한 독자층과 만났으며, 지금도 수많은 새로운 독자들의 손에 그의 작품이 들려지고 있다. 가장 널리 읽히는 대표작으로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네 가지 사랑》, 《예기치 못한 기쁨》, 《고통의 문제》, 《개인 기도》,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상 홍성사), 현재까지 1억 부 넘게 판매되고 세 편의 장편 영화로도 제작되며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전 <나니아 나라 이야기> 시리즈(시공주니어 역간) 등이 있다.

옮긴이 _윤종석
《예수의 길》, 《하나님의 임재 연습》,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이상 두란노)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한 전문번역가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골든게이트침례신학교에서 교육학(M.A.)을, 트리니티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상담학(M.A.)을 전공했다.


C. S. 루이스를 향한 찬사
옥스퍼드의 명사이자 케임브리지 교수인 그는 필시 생명력이 장구할 것이다. 공룡처럼 한물간 존재라는 자평과는 달리 그의 글은 늘 독자들의 현재 자리로 찾아가는 호소력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기지와 지혜와 문체와 학식이 천국 문을 통과하는 필수 요건이라면 루이스는 천사의 반열에 들 것이다.
<뉴요커>(The New Yorker)

20세기의 어느 작가보다도 루이스의 말을 듣고 글을 읽는 이들은 자신의 철학적 전제를 재고할 수밖에 없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


차례
엮은이의 글

- 내 기도가 통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이 내 필요를 이미 다 아시는데 굳이 왜 구하는가?
- 기도가 짐스러운가?
- 시시콜콜 내 일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건 염치없는 일인가?
- 기도와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맞물리는가?
- 기도하려면 병적이리만치 내 죄를 성찰해야 하는가?
-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할 덫은 무엇인가?
- 기도를 꾸준히 실천하려면?
- 적당히 내 것을 챙기며 기도하는 것이 가능한가?
- 어떻게 ‘진짜 나’로서 ‘진짜 그분’ 앞에 설 것인가?
- 다윗처럼 즐거이 기도하려면?
- 기도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가운데 기도하고 있는가?
- 고난이 영혼에 유익하다는데, 고난을 면하려고 기도해도 되는가?
- 구해도 하나님이 거듭 안 된다고 하실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출전


본문 맛보기
<8-9쪽 중에서>
잘 알려진 기독교 신앙의 스승이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뜻밖의 일은 아니나 우리는 지난 세월 루이스가 쓴 많은 편지에 수시로 언급된 기도를 자칫 간과하기 쉽다.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그의 서신에는 이 문구가 단골로 등장한다. 이 문구를 그토록 자주 언급했다는 것은 루이스가 그만큼 기도의 실천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는 으레 사람들에게 기도해 줄 것을 약속했고, 그들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었으며,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상황을 물어 고쳤다. 루이스 본인의 기도 제목을 정리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기도서에 나오는 전통 기도문을 애용했으며, 청원 기도 말고도 기도의 형태가 다양했고, 기도를 둘러싼 사안들에 관해 수시로 조언을 했다. 기도라는 주제는 그의 간행물들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루이스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를 실천하고 생각하고 글로 썼다.

<22-23쪽 중에서>
그분은 피조물에게 위임하실 만한 일이라면 그 무엇도 직접 하시지 않는 것 같다. 직접 순식간에 완벽하게 처리하실 수 있는 일을 느리고 서투른 우리에게 명하신다. 맡겨 주신 일을 소홀히 하거나 실패할 여지까지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자유 의지를 가진 유한한 존재들을 전능자와 무사히 공존하게 하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려면 매 순간 하나님이 퇴위退位하다시피 하셔야 한다. 우리는 그저 수혜자나 방관자가 아니라, 특권을 입어 그분의 작전에 동참하거나 강권에 이끌려 그분의 일에 협력하는 존재다. “각자의 작은 삼지창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 신기한 과정이 그저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창조에만 그칠까? 이를 통해(보통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대단한 존재로, 그야말로 작은 신들로 만드신다.

<54-55쪽 중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밀쳐 내다 보면 나머지 기도까지 다 망치지 않는가? 우리가 숨김없이 다 내놓으면 하나님이 지나친 부분을 알맞게 조정해 주신다네. 머릿속에서 떨치려 할수록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잡념에 짓눌릴 뿐이야. “소음은 듣지 않으려 할 때 가장 크게 들린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질서가 바로 잡힌 사고방식은 기도로 구할 복이지 기도하기 위해 꾸며 입는 옷이 아니라네.
그리고 작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큰 시련이 닥쳐올 때도 쓸 만한 습관이나 방책이 없어.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유치한 것을 구할 줄 모르면 아마 큰 것도 쉽게 구하지 못할 걸세. 너무 고상해서는 안 되네. 때로우리가 작은 일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엄보다는 우리의 체면 때문이지.

<107-108쪽 중에서>
“하나님은 빈손에 주신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도 있습니다. 양손에 짐이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짐이 늘 죄나 세상 염려는 아닐 겁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그분을 예배하려는 조급한 시도도 때로는 짐이 되니까요. 내 경우만 하더라도 가장 단골로 기도를 방해하는 잡념은 중대한 내용이 아니라 잠시 후에 하거나 삼가야 할 일과 같은 자잘한 내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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