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오리진의 회복도은미(eun-mi Do) 지음

가정, 오리진의 회복 표지

하나님의 진정한 창조, 가족
사람과 영원토록 같이 살고 싶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다

  • 출간일2018.05.16
  • 브랜드두란노
  • 책분야지성과영성
  • 페이지264p / 150*210(mm)
  • ISBN9788953129863
  • 원서명
  • 출간예정
처음이 좋았더라
가정, 오리진의 회복

가족이 창조된 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창조다

다시 에덴으로,
진정한 가족으로!


창세기에는 가정에 대한 풍성한 언어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풀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는 곧 가족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풀지 못하면 창조는 풀리지 않아 세상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세상살이가 어려울수록 가족은 서로를 해치며 흩어져버린다. 가족이야말로 말세를 푸는 가장 중요한 비밀 언어인데 말이다. 가정을 알면, 땅과 하늘이 풀린다. 창세기 속 한 단어 한 단어의 뜻을 살펴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가족의 모습이 무엇인지, 가족된 우리는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사람과 영원토록 같이 살고 싶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한 개인으로 죽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필히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다. 이것이 사람과 가족하려는 하나님의 창조 목표요, 거룩한 과정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당신의 아들들을 불러 이 거룩한 경영에 동역하기를 원하신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프로젝트’, 즉 하나님의 사람 사랑 프로젝트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필히 완성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 플랜이다. 이는 창조 이래로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원한 계획이다.
이 책은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17)를 중심으로 히브리어 원어에 담긴 뜻으로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도와준다. 하나님이 에덴을 창조하시며 느끼셨던 기쁨을 함께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영적 경험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무너진 자신, 가정, 공동체를 회복하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오리진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저자_도은미
15세에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가 이듬해에 브라질로 이주하여 41년 동안 거주한 저자는 21세에 예수를 영접했다. 남편인 황은철 목사를 만나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지금은 세 명의 손녀와 한 명의 손자를 둔 다복한 할머니다. 저자는 독특한 시각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전 세계를 누비는 영향력 있는 가정사역자로, 이 책에서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17)를 중심으로 히브리어 원어에 담긴 뜻으로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도와준다. 이를 통해 무너진 자신, 가정, 공동체를 회복하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오리진을 회복하게 한다.
저자는 남편이 브라질 상파울로 동양선교교회를 은퇴함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고, 현재는 남편과 함께 북한 선교로의 부르심을 받아 한국에서 사역을 준비 중이다. 브라질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선교학 석사와 결혼과 가정 치료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 두란노 어린이 연구원 실장이었으며, 남편과 함께 ‘promise keeper 운동’에서 착안해 뒤틀린 아버지상을 바로잡기 위한 아버지학교를 창설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살아 있는 가정》, 《사연으로 움직이는 가정》, 《대화학교》, 《고쳐달라 말고 죽여달라 하라》(이상 두란노)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part 1 아보다, 다스림이 아니라 섬김이다
chapter 1 다스림의 진짜 의미
chapter 2 진정한 다스림은 큰 자가 작은 자를섬기는 것
chapter 3 섬김이 예배다
chapter 4 아보다는 일상생활이다

part 2 멜라카의 세상에서 아보다로 살기
chapter 1 멜라카는 무엇인가?
chapter 2 변질된 멜라카의 세상
chapter 3 아보다의 일, 멜라카의 일
chapter 4 모든 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기억하라

part 3 라다, 너를 사랑하여 기꺼이 너가 되는 것
chapter 1 하나님과 가족이 되는 라다
chapter 2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와 예수님의 라다
chapter 3 예수 안에서 자포자부하는 삶

part 4 샤마르, 하나 되는 가족을 이루라
chapter 1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라
chapter 2 언약 안으로 들어가라
chapter 3 하나님의 영원한 피의 언약
chapter 4 사람과 하나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
chapter 5 하나님의 루아흐로 호흡하라
chapter 6 관계 지킴이 섬김의 끝이다
chapter 7 선악 지식 나무 열매의 비밀

나오는 말 다시 에덴으로, 진정한 가족으로!


본문 맛보기
하나님은 ‘아보다’라는 언어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에덴의 생활 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하셨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태어나는 곳이었기에, 하나님은 에덴에서의 수고를 ‘일한다’고 표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 수고를 ‘아보다’라고 표현하셨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아보다’가 시작된 곳이다. 어찌 하나님께 가족이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아보다’는 하나님이 에덴에서 살아갈 사람에게 주신 일방적인 명령이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시행하신 당신의 에덴 생활 언어였다. 사람이 에덴동산을 아보다 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생물과 사람과 에덴에 속한 모든 것을 아보다 하셨다. 하늘과 땅을 섬기셨고, 모든 생물을 섬기셨다. 그리고 사람을 손수 챙기시고, 정성껏 섬기셨다. 그 섬김으로 하늘을 하늘답게, 땅을 땅답게, 생물을 생물답게 그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신 것이다. 이제 그 아보다를 사람에게 위임하여, 에덴동산이 에덴동산다워지도록 아보다 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아보다는 명령이기 전에 축복의 선포요, 형통의 선포다. 하나님의 아보다를 이어받아, 아담이 이에 동참하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보다의 기본적인 의미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사람과 생물을 섬기는 것이요, 부모가 자식을 섬기는 것이요, 제사장이 백성을 섬기는 것이다. 큰 자가 되고 싶으면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보다의 영성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의 수고를 어떤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아보다의 값이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모든 이름을 다 포기하시고, 오직 아버지라는 신분과 그 이름 하나만 붙잡고 에덴동산에서 아보다의 생활을 시작하신 하나님! 그 아버지 하나님의 아보다를 이 세상의 어떤 숫자나 물질이 대치할 수 있겠는가!
_22-23p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께는 사람보다 더 관심을 끄는 다른 것이 없다. 죄인 된 사람과 죄로 더럽혀진 땅과는 절대 관계할 수 없게 된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과 기질과 품격과 존재의 모든 값을 다 거스르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다. ‘라다’는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의 자리에까지 기꺼이 내려가는 생활이다. 함께 거하고, 함께 느끼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그 ‘함께’가 하나를 이루는 것! 그것이 라다의 자연적인 결과요, 영적 생산이며, 생활이다!

하나님은 왕이 백성을 다스리듯 종적이며 존재적 차이를 내는 다스림을 행세하신 적이 없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다스림은 언제나 아보다로 사람과 함께하며,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라다는 함께 살기 위함이요, 하나 되기 위함이요, 곧 가족이 되기 위해 내려오심을 뜻한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보다 한다. 섬긴다. 수고한다. 사랑한다. 하나 된다. 가족한다. 그 ‘가족하는 것’, 그것이 아보다 하시는 하나님의 핵심이요, 에덴의 비밀 코드다. 부모만 자녀를 다스리지 않는다. 자녀도 부모를 다스린다. 서로 아보다 하는 것이다. 하나 되고, 가족이 되도록 서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서로의 아보다가 서로를 최고로 만들어 가는 섬김, 그것이 에덴의 생활이다. 서로 가족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 아보다요 라다다.
_127-129p

사람들은 ‘너 없는 인생’은 참으로 ‘행복한 나’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나’ 또한 ‘너’에게 악이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먹지 말아야 할 열매만 자꾸 입으로 넣는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나’가 바로 ‘너’라는 이웃의 ‘악’이 됨도 모르고 먹는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는 말씀은 ‘이웃과 악과 나’를 함께 묶어 놓았다. 이웃이 악이요, 그 악이 나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웃=악=나’ 이 말은 ‘너=악=나’이다. 둘이 한 몸이 되어야만 살 수 있는 공식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나는 나 스스로에게 악한 환경이 되며, 악의 열매가 되고, 이웃을 사랑하는 나는 결국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부메랑이 되는 것이다. 너 없이 나 없고, 나 없이 너 없다. ‘너’가 ‘나’가 되고, ‘우리’를 이룬다. 뗄 수 없는 가족관계다. 너와 나는 지켜야 하는 가족일 뿐이다. 그래서 라아 앞에 ‘선’이라는 토브가 먼저 와서,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_250-25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