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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때의 앗시리아  
살만에셀이 죽고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왕권을 장악한 뒤(BC 745-727년) 앗시리아는 군사력을 키우며 세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앗시리아는 당시 유프라테스 강 너머의 땅이 교통의 요충이였고 목재와 광물 자원이 풍부한 것을 탐내어 이 지역의 두로, 비블로스, 다메섹, 이스라엘을 침략했다(BC 738년).
이때 디글랏 빌레셀(불)이 이스라엘에 침입하여 조공을 요구하자 므나헴 왕은 부자들의 돈을 토색하여 모은 은 1,000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쳤다(왕하 15:19). 디글랏 빌레셀은 유다 왕 아하스로부터 이스라엘과 다메섹의 연맹군을 물리쳐 달라는 요청을 받자(왕하 16:7) 이를 빌미로 다시 이스라엘을 침입해 갈릴리와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영토를 유린하고 많은 사람들을 잡아가며 도시들을 파괴했다(왕하 15:29).
그 후 베가에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된 호세아가(왕하 15:30) 친이집트 정책을 펴고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자(왕하 17:3-4)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 5세는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해(BC 724년) 마침내 BC 722년에 이스라엘을 정복했다(왕하 18:9-10).

후에 사르곤을 이어 왕이 된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반앗시리아 정책과 함께 주변 나라와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키자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다(왕하 18:13; 사 36:1-2). 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화해를 요청하며 성전과 왕궁의 금과 은을 모두 거두어 주었지만(왕하 18:14-16) 산헤립은 갖은 모욕을 가했다(왕하 18:17-37; 사 36:3-22). 이때 히스기야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기적으로 앗시리아를 물러가게 하셨다(왕하 19:35). 유다 정복에 실패하고 돌아간 산헤립은 암살당하고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아시리아 왕이 되었다(왕하 19:36-37). 이렇게 앗시리아는 이스라엘가 유다를 치는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되었지만(사 10:5-6) 결국 그들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사 10:12-16; 14: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