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일, 불길한 사람이나 물건.” ‘징크스’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모처럼 아침에 세차를 하고 출근했는데, 하필 오후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한다면 우린 이렇게 말한다. “세차를 하면 꼭 비가 오더라. 이거 징크스야.” “나는 꼭 이 옷만 입고 나오면 자꾸 뭘 묻히고 남들이 옷에 뭘 엎고 그래.” 적어도 한 번 이상 반복된 불길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만큼 반복되면 특정한 사람이나 물건, 혹은 일이 ‘징크스’라고 선포될 수 있는 걸까?
느닷없이 징크스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드라마 <여우각시별>을 묵상하기 위함이다. 등장인물 중에 ‘인우’가 동료에게 그렇게 말했다. “수연이는 나에게 징크스야. 저 아이와 함께 있으면 뭐든 잘 안 돼. 잘 되던 일도 엉망이 되어버려.” 인우가 말한 ‘수연’은 인우의 아버지가 재혼을 하시면서 잠깐 형제 사이가 되었던 동생이다. 곁을 주지 않으려 했는데, 껌딱지처럼 달라붙으며 인우를 무척 따랐다. 겉으로는 툴툴거렸지만 내심 귀엽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형제가 아주 사이좋아 보여서 덤으로 주는 거야!” 둘이 깔깔대며 먹는 모습에 우동집 주인이 국수사리를 듬뿍 얹어준 날도 있었다. 그런데 사채업자에게 맞고 끌려가던 날 밤, 상관치 말고 얼른 피하라는 형의 당부에도 수연이는 눈물바람으로 형을 태운 봉고차 뒤를 바짝 쫓았다. 보통 잔인한 사람들이 아닌데 어쩌자고 저렇게 쫓아오는 것인지, 불안하고 애가 탄 인우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만 봉고차가 빠른 속도로 후진을 해버렸다. 끼이익! 멀리 튕겨져 나간 수연은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고, 오른쪽 팔과 다리가 심하게 꺾여 있었다. “에이, 그냥 처리해 버리고 가자.” 다친 수연을 난감하게 바라보다 그냥 죽여 버리자는 사채업자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미 손발이 묶여 있던 인우는 동생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의식을 잃어가는 수연과 얼핏 시선이 마주쳤지만, 인우는 도망가는 선택을 했다. 드라마는 구구절절 설명을 넣지 않았지만 이유는 자명했다. 얼른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야 그나마 동생이 살 가능성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고 난 뒤에 인우가 동생을 찾지 않은 것은 이해 불가이다. 12년이 흐르고 인우가 수연을 다시 만난 것은 회사 팀장과 사원으로였다. 사정은 자세히 몰라도 지금은 공항 팀장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적어도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인우는 수연을 찾았어야 했다.

내 뒤를 좇아오다가 그리 된 것인데, 비록 직접 가해를 한 것은 아니어도 동생의 행방이나 상태가 궁금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인우는 오히려 건강한 모습으로 같은 회사 신입 사원으로 취직한 수연의 존재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저 아이가 내 곁에 없었으면 좋겠어.” 아프겠지, 그 날이 계속 떠오르며 힘들겠지. 그래서 차라리 안 보고 싶은 것이겠지. 십분 이해하여 이런 심정이겠지 싶었는데, 지금까지의 드라마 전개에서 인우는 수연을 내보내기 위해 너무 악랄할 정도로 뒤를 캔다. 수연은 카이스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입사를 했다고 한다.
의지가 대단한 아이다. 하지만 수상한 일이다. 어쩌다 목숨은 건졌더라도 결코 온전할 수 없을 몸인데, 어찌 저리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가 말이다.

사실 수연은 그날의 사고로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오른팔을 절단했고, 오른 다리도 발목부터 허벅지까지는 신경이 다 죽었다. 이러고 살아서 무엇하랴 싶어서 죽으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높은 계단 위에서 휠체어 전동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한 아저씨가 막는 바람에 살았다. 그날은 ‘우연히’ 아저씨를 만나 살았지만, 그것이 곧 내가 ‘매일’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아니지 않나. 하지만 그런 수연의 마음을 읽으며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우연 같은 건 없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오늘도 지나보면 다 이유가 있는 걸 거야.” 수연은 결국 힘을 냈고, 그날 죽지 않은 이유를 찾으려 열심히 살았다. 그가 현재 착용하고 있는 웨어러블 로봇팔과 다리는 어떤 경로로 얻게 되었는지 아직 그 과정은 모르겠지만, 덕분에 수연은 말끔한 슈트 정장을 멋지게 소화하고 뚜벅뚜벅 공항을 걸으며 빈틈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여객서비스 팀의 신입사원이 되었다.
그러나 수연의 로봇팔은 장애를 숨기거나 보조하는 정도의 기능을 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수연에게 자꾸 장애물이 되었다. 가끔 쇠붙이가 팔에 철컥 붙는 것은 그나마 귀여운 축이다. 때론 곤경에 처한 동료 직원이나 여객을 도우며 괴력을 발휘하지만, 이 장면을 고스란히 녹화한 CCTV,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직원들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특히나 보안 팀 최무자 팀장의 눈에 여지없이 걸려들었다. 최 팀장의 의심을 지켜보며 인우는 수연의 웨어러블 장치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으려고 그를 부추긴다. 그저 보조물이 아니라 강화 장치로 사용되고 있는 수연의 웨어러블이 오작동을 하거나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 여객서비스 팀으로서는 그야말로 가장 위험한 직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야.
평범해지고 싶어서 그런 장치를 단 거야.
제 몫대로 살 수 있는 일상을 내 동생 지훈이는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지만, 수연이만큼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어.”

수연을 공항 직원으로 채용한 상사인 양서군 팀장에게는 장애로 힘겨워 하다가 먼저 떠난 동생이 있었나 보다. 입사 동기이자 연인 사이였던 최 팀장에게 수연의 특수 상황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했다. 양 팀장을 향한 연심에서였는지, 아니면 “딱 한 달만 오늘 같은 일상을 살고 싶다”는 수연을 동정해서였는지, 매사 엄격하고 원리원칙 분명한 최 팀장도 수연을 감싸기로 결정한다.
이쯤 되니 인우의 행각이 더욱 괘씸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것으로 치자면 양 팀장도 최 팀장도 남남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우는 그래도 한때 법적으로나마 형제였던 사이가 아닌가. 그리고 직접적 가해자는 아니었더라도 수연의 고통에 어느 정도는 원인 제공을 한 당사자이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수연을 보호하려 해야 하는데, 오히려 눈앞에서 치우려 저리 안달이라니. 그가 밝힌 이유는 ‘징크스’였다. 같이 있으면 자기 일을 꼭 망치게 된다는. 아마 저렇게 말은 해도 더 깊은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겠지. 아직 드라마는 분량이 꽤나 남아 있어 인우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브라운관을 뚫고 들어가 인우에게 팁을 줄 수는 없는 일이나, 적어도 나는 그가 징크스를 극복하는 방법을 안다. 징크스는 특정 사람과 물건과 연결하여 안 좋은 일이 적어도 한 번 이상 반복되었을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 극복의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그 특정한 사람이나 물건과 연결하여 좋은 일을 적어도 한 번 이상 만들면 되는 거다. 두 번, 세 번, 그렇게 만드는 과정에서 기쁨, 행복, 따듯함, 사랑, 이런 단어들이 채워지게 된다면, 그 사람이나 물건은 더 이상 징크스가 아니게 될 테니까.
 “재수 없어. 오늘 하루도 망치겠네.” 요즘 유행하는 미러링을 너무나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날 지하철에서 빈 옆자리에 남자가 앉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나의 제자는 걱정을 했다. 처음엔 여자들을 무시하는 남자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반사적 응시의 언어를 발화했던 것인데, 이제는 ‘남자’ 자체가 징크스가 되었다는 고백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는데, 남자를 사랑하는 수밖에.” 무책임하게 던진 말은 아니었다. 아빠, 오빠, 남동생, 남자사람 친구, 누가 되었던 마주 보고 의미를 나누는 구체적인 남자사람들이 하나씩 늘어갈 때, 그리고 그 경험들이 반복될 때 결국 ‘남자라는 징크스’를 넘어설 수 있지 않겠냐는 조언이었다. 물론 모두가 나의 선의에 선의로 응답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에는 나를 지키기 위해 뒤로 한발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두 번의 안 좋은 기억으로 곧바로 ‘너는 나의 징크스’라고 선언하고 내 삶의 바운더리에서 제거해 버리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어찌 징크스가 있을까? 그러니 용납하고 사랑하며 좋은 기억을 만들어내자. 그것이 징크스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백소영은 이화여대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강의로, 글쓰기로, 그리고 대중 특강으로 사람을 만나면서 삶을 배우고
삶에 관여하는 구체적인 신학을 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저서로 「드라마틱」,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등이 있다.